류재순 소설가/수필가 
류재순 소설가/수필가 

[동북아신문=류재순 소설가] 나의 소싯적 친구들은 내 이름과 내 가족을 떠올리면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식구인 줄 안다. 내 입에서도 그렇고 우리 집에 놀러 다니던 그들의 눈에도 이렇게 원래부터 단솔한 세 식구임이 분명하였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마냥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강아지처럼 할머니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애들이 입에 달아놓고 부르는 엄마라는 소리가 외려 이상하게 들렸다.
엄마가 할머니고 할머니가 역시 엄마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유년기를 보낼 정도였다. 나는 이렇게 엄마라는 개념조차 희미했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는 엄마고 할머니는 할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알게 되였어도 엄마를 그리워하거나 무슨 애틋한 정을 가져 본적도 없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이미 폐결핵에 쇄신되어가고 있는 엄마 품에서 젖 한 방울 먹어보지 못하고 “격리”되어 할머니 품에 안겼다.

그 시절에 폐결핵은 지금의 암처럼 불치의 병이었고 무서운 전염병으로 판정되어 엄마는 자그마한 독방에서 할머니가 건네주는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세상 뜰 때까지 그 방에서 한 번도 나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내가 네 살이 되던 해 동북 초겨울의 쌀쌀한 새벽바람 속에서 할머니는 돼지죽을 구유에 퍼준 후 나를 업고 그 골방의 작은 유리창 앞으로 걸어가셨다. 할머니는 업혀있는 나에게 할머니 어깨너머 유리창 앞으로 머리를 대고 안을 들여다보라며 말씀하셨다.

“네 엄마가 돌아가셨다. 저 방에 누워 있으니 얼굴이라도 보아둬라”

나는 힘껏 유리창에 이마를 붙이고 방안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어둠속 방안에 무엇이 있는지 분간이 안 갔다. 내가 한참 머뭇거리고 있을 때 ‘보이니? 보여? 하는 할머니의 재촉 소리가 나를 조급하게 하였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잘 알아듣지 못했고 그래서 슬프지도 않고 왜 꼭 보아야만 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나는 그만 “봤어 봤어”하고 거짓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체구가 작은 할머니는 힘이 빠졌는지 나를 덜컹 내려놓으셨다.

이것이 내가 친 엄마와의 얼굴도 제대로 확인 못한 체 단 한번의, 그리고 마지막 일별이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엄마는 신혼생활 사흘만에 전방으로 떠난 남편의 소식도 모른 체, 나에게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하고 23살이란 꽃나이에 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듬해에 아버지는 5년 만에 제대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다시 새 가정을 이루었지만 딸 없이 아들만 낳았던 할머니는 나를 아버지가 다시 이룬 새 가정에 보내지 않고 나를 손녀삼아 딸 삼아 사랑 듬뿍 쏟으며 손수 키우셨다.

물론 나도 나이가 들면서 나를 낳아 준 친 엄마는 어떤 분이였을까 가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대놓고 묻지는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얼굴이 희기로 좀 유명했다. 내 이름을 잘 모르는 어떤 친구들은 나를 “얼굴 하얀 애”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가 문득 이런 말을 하셨다. 
“너는 네 엄마를 닮아 얼굴이 유난히 희다”
그래서 나는 우연히 나의 엄마는 얼굴이 유난히 흰 여자였다는 유일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은 학교가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 통학하는 학생 거의 없이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미 중학 2학년생이 된 나도 예외 없이 기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밤새 온몸이 불덩이처럼 타오르던 나는 기상벨 소리를 들으면서도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바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규모도 설비도 별로였던 크지 않은 지방병원에서 정확한 확진을 받기 위하여 한자 반 길이보다 더 길어 보이는 크고 우둔한 주사바늘로 척추에서 뇌수를 뽑는 시술을 했다. 그때 나는 너무 무섭고 아파 입을 벌린 체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내가 너무 아파 발버둥 칠 가봐 간호사와 함께 내 머리와 사지를 짓누르고 있던 할머니는 공포에 솜바지가 다 땀에 푹 젖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굵고 큰바늘이 여린 소녀의 척추를 뚫고 뇌수를 뽑아내는 장면을 호사가 아닌 친 할머니가 보고 있자니 얼마나 끔찍했을까? 물론 현대 의학은 더는 이렇게 큰 바늘을 쓰지 않을 것이다. 결과 병명은 뇌수막염(流行性 腦膜炎)이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노약자나 어린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라고 하였다.

유행성 감기 같은 질병이 한창이었던 동기계절이라 병원 입원실은 환자들로 꽉 차 나는 응급환자라 그나마 복도 한 구석에나마 침대를 놓고 링겔을 맞을 수 있었다. 다들 얘는 가망이 없다는 소리에 할머니는 고열에 입술이 다 부르트고 숨결만 가릉거리고 있는 나를 붙들고 계속 울고 있었다. 

맥 풀린 겨울의 석양이 기다란 병원 복도를 비스듬히 비추고 방금 켜진 천장의 등빛이  어둑한 복도의 한구석의 침상을 어슴프레 비추고 있었다. 기억에 내가 잠시 눈꺼풀을 간신히 올리고 눈을 떴던 것 같다.

바로 그때, 내 침상 먼발치 컴컴한 복도 끝에서 하얀 얼굴모양 하나가 내 쪽으로 어른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몸통 같은 다른 형체는 하나도 없었고 얼굴 오관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분명 얼굴이란 느낌이, 동그스럼하고 나부죽한 그 하얀 물체가 얼굴이란 확신은 내 의식속에 분명하였다.

“아 엄마” 내 마음이 소리쳤다. 생각지도 않던 부름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 물체에 대한 확신성을 가지고 난생 처음 엄마라고 불러 버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어리둥절해 질 정도다. 엄마  엄마 속으로 연이어 되뇌이고 있는데 나를 조용히 지켜보는듯하던 그 우수에 찬 물체가 갑자기 또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내 입술을 적셔주려 컵에 물을 가지러 갔던 할머니가 내가 눈을 뜬 것을 보고 반색을 하셨다. 

“할머니 하얀 얼굴이 하얀 …”
나는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응? 하얀 얼굴이?…  세상에 너 죽은 엄마가 널 살리려 왔구나”
할머니는 깜작 놀라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죽어서도 너를 살리려 …너 이제 살았다”

생전에 처음으로, 얼떨결에 한번 불러 본 엄마, 허상 속에 나타난, 믿기지 않는 실체처럼 , 꿈결처럼 내 생사의 관두에 나타난 하얀 얼굴!…실상 아닌 허상, 허상 아닌 실상, 나는 그렇게 엄마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이제는 나도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가 되었다. 나는 다시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해 본다. 

그 아픈 몸으로 배속에서 나를 키웠고 관자노리에 파란 핏줄이 톡톡 튀도록 잔기침을 하시면서 목숨 바쳐 나를 출생 하셨다. 어린 생명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품에서 빼앗겨 다시는 못 본 아기, 다른 방에서 장밤 들려오는 젖을 찾는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들… 남편도 아기도 옆에 없은 체 홀로 골방에서 숨을 거두게 될 때 엄마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내 가슴은 아리고 아프고 터지는 것 같다. 

엄마를 위해 나는 이렇게 아주 늦어진 눈물을 흘리군 한다. 
세상에 떠도는 영혼이란 정말 있을까? 내 생사고비에 갑자기 나타났던 그 하얀 얼굴…   

류재순(柳才顺) 프로필  

중국 길림성 출생.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입시시 중국문화대혁명으로 대학입시가 취소 돼 수년 후 문화혁명 결속과 동시 연변대학 통신학 조문본과 수료.

중편소설  "송화호의 푸른 물"은 "도라지"문학대상과 동시 중국어로 번역돼 당시 상해시 문련주석이며 저명미술가이며 작가인 준청(俊青)의  절찬을 받으며 국가급 중국작가협회 회원이 되면서  서란시 문화관에서  공직으로 퇴직까지 조선족 문화창작 활동등을 조직, 발전시켜왔음.

현재 귀화 후, 재한동포문인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공무원 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예작가회 자문, 아태문화예술연합회 수석부회장 등으로 계속 활약 중.

동포문학 "설원컵" 소설대상, 도라지 해외 문학상 ,도꾜 세계조선족 문화축제에서 글짓기 응모에서 공로상, 한국문예 수필 문학대상, 한국예술 평론가 협의회 제42회심사위원선정 특별예술가"로 선정됐다. 

소설집으로 "여인들의 마음"(북경민족출판사), "홀리워 가는 처녀"(서울 과학과 사상사), 산문집 "칵테일은 어떤 맛일까"(서울문학출판부)가 있다. 

'도라지 2024,1기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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