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날의 약속
 

어머니, 그 부우옇고 춥기만 하던 겨울도 마침내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봄이 왔네요.
꽃 피는 새봄이 찾아왔네요.
벌써부터 TV에서는 매화꽃축제요 진달래축제요 벚꽃축제요 하며 개화일들을 떠들어대고 있지만 꽃축제 말만 나오면 저는 기분이 별로예요. 마치 축제를 위해 피여나는 꽃인양 보도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슬프게 지켜보노라면 어머니와 지키지 못한 그 약속 때문에 더 상심하게 되네요.
약속이였지요!
그건 분명 약속이였는데 제가 일방적으로 지켜드리지 못한 아픈 약속이거든요.
하긴 약속이라 해봤자 거창한 것은 아니고 꽃을 유난히 즐기는 당신과 함께 벚꽃구경이나 가자던 그런 조그만 약속이였지요. 그런데도 그걸 전 끝내 지키지 못했군요.
어머니, 세상에서 그야말로 제가 제일 사랑하는 당신께서 저희들 곁을 떠난지도 벌써 3년 세월이 흐르는군요.
3년 전의 5월이였지요. 그때도 꽃들은 울긋불긋 피여서 푸른 5월을 장식하고 있었지요. 저희 남매들은 중국에 혼자 계시던 80고령의 당신을 한국으로 모셔왔지요. 일 다니는 오빠의 밥이라도 지어주겠다고 부득부득 우기시는 당신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오빠네가 당신을 모시게 되었지요. 둘째언니네와 불과 20 미터 상거한.
평소 건강하게 지내시는 당신이라 저는 짬 나는대로만 보러 다녔고 언니들은 그나마 자주 혼자 집지킴이가 된 당신을 모시고 바람 쐬러 다니곤 했지요. 그런 터라 전 당신께서 그렇게 빨리 가실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어요. 저희들은 그냥 편히 쉬라고 집근처 시장도 가르쳐드리고 가까운 교회도 다니게 해드렸는데 당신은 무척 기뻐하시는 눈치셨지요.
어느 날 당신 뵈러 갔다가 길가의 화단에 걸터앉아 화단의 풀을 뽑으시는 당신한테 전 벌컥 화를 내고 말았지요.
"엄마, 한국에는 전문 화단 관리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요. 왜 그러세요?"
"내가 심심해서 그래. 봐, 이 꽃들 얼마나 예쁘냐?"
그제야 당신께서 평소에도 꽃을 무척 즐기시던 기억들이 추억의 저편에서 조금씩 떠올라주었어요.
그랬지요. 제가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도 시골의 울집 앞마당에는 당신께서 심으신 봉숭아며 백일홍, 분꽃에 가을국화까지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꽃이 질 줄 몰랐지요. 고추를 심은 터밭머리에도 봉숭아꽃이 이랑끝머리에 한 포기씩 심어져 있을 정도였으니깐요. 고추들을 거느린 봉숭아라니 참 당신의 그 재치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였어요. 당신께서는 유독 봉숭아를 즐기셨지요. 그리하여 우리집 앞마당은 동네아줌마들이 꽃구경하면서 수다를 떠는 모임장소로 되군 했지요.
"엄마, 래년 봄이 되면 우리 함께 벚꽃구경 가요. 올해는 이미 다 지났으니 래년에는 꼭 가요. 엄마 꽃 좋아하시잖아요?"
"그래. 꼭 가자. 너희 언니들이랑 다 같이 가자꾸나."
당신의 환해지시는 표정을 보며 전 무척 뿌듯해났어요. 당신한테 기쁨 한 송이를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꿀물을 마신 듯 달콤해나기까지 했어요.
그러나 저의 기쁨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어요.
당신의 건강만큼은 정말이지 그토록 믿고 믿었는데 이듬해 벚꽃이 아직 피지도 못했는데 당신께서는 감기처럼 앓기 시작하셨지요. 병원에 가서 검진도 받고 약도 드셨지만 낫기는커녕 점점 위중해지셨지요. 저희 남매들은 병원에 가시지 않겠다고 우기시는 당신을 설득해 대학병원에 갔지요. 교수선생님의 정밀검진을 위해 입원하라는 권고도 마다한채 당신께서는 기어이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아마도 당신께서는 당신의 갈 길을 이미 알고 계신 듯 했어요.
그렇게 20여일만에 당신께서는 그토록 담담하게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지요. 지는 벚꽃잎이 바람에 억수가 되어 휘날리던 그 새벽녘에 말입니다.
당신은 평소 저희들과의 약속이라면 천하 별일이 있어도 꼭 지키시곤 하셨지요. 그런데 저희들은 그 흔한 꽃구경약속마저 지키지 못했군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은 당신께서 건강하시다는 리유로, 이 세상 그 흔하디 흔한 구실과 핑계와 리유를 줄레줄레 늘어놓으면서.
뒤축이 닳은 신발 때문에 언니가 삐지자 당신은 꼭 새신을 사준다고 약속을 하셨지요. 그리고는 남들이 다 쉬는 쉴 참이면 어느새 약초를 캐서 조금씩 조금씩 모은 돈으로 끝내 신발을 사서 안겨주셨지요. 현성중학교에 다니던 저의 학부모회의에도 당신께서는 밭일이 그토록 바쁜 와중에도 새벽 첫차로 다녀오시고 돌아와서는 다시 밭일을 나가셨지요. 외손주의 돌옷은 외할미가 챙기는 것이라던 약속, 무려 일곱이나 되는 손군들의 첫돌옷을 당신께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갖춰주시는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셨지요.
아, 그런데 마지막 약속은 왜 지키지 못하셨나요? 휠체어로 모시고라도 벚꽃구경을 가자고 했더니 당신께서는 너희들만 힘들 거라고 그러니 래년에 병 툭 털고나서 시원히 다녀오자고 약속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그 약속을 왜 지키지 않고 그렇게 떠나셨나요? 혹시 아버지와 천국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미리 하신 건 아니겠지요?
어머니, 벚꽃이 정말이지 하늘이 미여지게 피여있습니다. 당신과 지키지 못한 벚꽃구경 약속 때문에 이 가슴도 미여지는 것 같습니다.
오직 자식사랑을 위해 그 사랑 하나만을 위해 당신의 신조이신 약속마저 꺾으셨던 어머니, 만약에 말이죠. 만약 기적이 일어나 어머니와 단 하루만이라도 같이할 수만 있다면 전 어머니와의 약속부터 지킬 것입니다. 벚꽃 다 떨어진 계절이라 하더라도 이 세상 벚꽃 다 사다가 천지간에 벚꽃 가득 뿌려놓고 당신과의 그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맛있는 도시락도 싸가지고 하루 종일 벚꽃놀이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 그건 저만의 상상이겠지요? 이제 정말 더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겠지요?
나중에 어머니, 나중에 언젠가 저도 어머니 곁에 가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긴 려행을 하게 된다면 말이죠. 그땐 벚꽃구경 이 약속 꼭 지킬 겁니다. 어느 봄날에 손가락도 걸지 않고 나눴던 그 약속을 말입니다.
지금 저 창밖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벚꽃이 사푼사푼 떨어지고 있는데…
지금 저의 가슴은 봄날의 약속으로 터질 것만 같은데…

 

2. 추억만들기
 

추억이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어 가슴속 어딘가에 저장해두었다가 수시로 꺼내보는 소중한 일기장이다. 그런 소중한 일기장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적은 사람은 아무래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나, 둘, 셋, 넷... 넷이 한 이불을 덮고 조롱조롱 누워있다. 갑자기 하나둘 소리와 함께 이불이 머리우로 쑥 올라간다.
어라?
아, 뭐야?
하하하...
호호호...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숨이 넘어가게 웃는다. 나와 셋째 언니도 그제야 영문을 알아채고 같이 깔깔 웃어댄다. 이것은 아주 어릴 적 우리 네 자매가 늘 하던 이불씌우기 장난질이다.
어릴 적에 우리 집은 가난하여 네 자매가 이불 한 채를 같이 덮고 잤다.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량쪽에 눕고 셋째 언니와 막내인 내가 가운데 누웠다.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이불을 우로 당겨덮을 때마다 키가 작은 나와 셋째 언니가 이불속에 쏙 들어가 숨이 막혀 허우적대는 모습이 재밌다고 큰 언니와 둘째 언니는 거의 밤마다 그 장난을 했다. 본래는 막내인 나와 셋째 언니가 제일 바깥쪽에 누웠는데 엄마는 내가 자꾸 이불에서 밀려나온다며 큰 언니더러 나를 안고자라고 해서 나는 큰 언니의 과문읽는 소리를 엄마의 자장가 대신 들으며 잠이 들군 했다.
하지만 오늘 한국 제주도의 어느 고급호텔에서 우린 또 그 장난을 했다. 2인용 침대 하나와 1인용 침대 하나가 있는 널찍한 호텔방에서 침대 두 개를 붙여놓고 우리 네 자매는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느닷없이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이불을 확 우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씻은 듯 파아란 하늘이 소녀의 얼굴처럼 순수하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도 더없이 정다운 6월의 어느 날 우리 네 자매는 약소대로 2박3일의 제주도려행길에 올랐다. 큰 언니의 환갑을 기념하여 몇 달전부터 계획한 우리 신씨네 네 자매의 프로그램이 작동한 것이다. 우리 네 자매는 티비에 나오는 것처럼 연한 핑크색 반팔티에 첫째, 둘쨰, 셋쨰, 넷째 이렇게 하얀 글씨로 새긴 커플티를 입고 명승지려행을 시작했다. 마침 제주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사촌녀동생의 차로 우리는 비용도 절약하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추억, 추억의 앞자리에 빈칸을 놓아둔다면 사람들은 어떤 형용사를 골라넣을 것인가? 소중한, 아름다운, 즐거운, 행복한 등과 같은 밝고 긍정적인 단어들만 놓이게 될가?
내가 철이 든 다음에도 우리 집은 5남매에 아버지께서 연거푸 사고를 당하시고 허약한 어머니께서 혼자 생산대 일에 참가함으로써 남들처럼 잘 살지 못하고 여전히 궁색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 집은 매우 화목했다. 맏이인 오빠가 일찍 학업을 포기하고 부모님을 도와 생산대 일에 참가하셨고 큰 언니도 가정일을 도왔다. 다만 막내인 나와 두 살 우인 셋째 언니가 어머니께서 똑같게 나누어준 누룽지를 놓고 서로 큰 것을 먹겠다고 싸우군 했다. 그러면 어머니한테 된통 혼나군 했고 그럴 때마다 울음판이 벌어져 집안이 소란스럽긴 했다. 게다가 막내인 내가 언니들과 버릇없이 놀아 아버지한테 혼나고 어머니품에 안겨 슬프게 울기도 했고...
제주도 명물인 1메터가 넘는 은갈치구이를 먹으면서 큰 언니는 자꾸 가시를 잘 발라 내 접시에 놓아주면서 지나간 슬프고도 웃긴 추억을 꺼내놓았다.
ㅡ 어릴 적 내가 널 안고잤어. 밥도 먹여주고.
ㅡ 나 이젠 어른이야. 큰 언니도 참...
ㅡ 그래도 넌 우리 집 막내거든.
롱담하기 좋아하는 둘째 언니도 한마디 거든다.
ㅡ 넌 어릴 때 나하고 버릇없이 놀았어.
그러자 셋째 언니마저 나를 몰아가기에 동참한다.
하하하
호호호
깔깔깔
까르르
언니들의 웃음에 나도 그만 웃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갈치구이를 먹으니 예전 황어를 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해마다 봄철이면 생산대에서 황어를 나누어주었다. 그걸 끓이면 어두일미네라 하시며 머리와 꼬리만 드시던 어머니생각에 우리는 또 울컥한다.
손 닿으면 파란 물이 들 것 같은 하늘아래 끝도 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우리는 즐겁고 행복에 찬 웃음소리로 백사장을 온통 하얗게 만들었다.
생산대일에 바쁘신 어머님을 도와 빨래하러 가는 큰 언니 뒤를 몰래 따라가서 큰 언니 옆에서 놀다가 앞으로 폭 꼬꾸라져 하마터면 강물에 떠내려갈번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일로 집으로 돌아온 큰 언니는 동생을 잘 보살피지 못했다고 아버지한테 엄청 혼났었다.
그 추억을 꺼내 닦으며 큰 언니는 내쪽을 보며 눈을 깜빡하신다. 혼났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던 것이다.
제주도의 천지연폭포, 해수욕장, 승마체험장, 용두암... 자연이 만들어낸 그 수많은 명소들에서 우리 네 자매는 때론 즐거운 추억을 때론 행복한 추억을 때론 슬픈 기억을 떠올리며 때론 깔깔거리고 따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는 무엇인가가 추억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그것의 소중함을 모른다고.
우리 네 자매의 제주도려행은 지난 추억과 더불어 또 하나의 즐겁고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이제 래년에는 오빠도 함께 와서 신씨네 5남매가 완전체로 보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자는 꿈은 우리 네 자매의 손가락에 단단히 걸려 약속되였다.
그래, 인생 별거 아니지. 우리는 추억을 만들면서 사는 거야!

신매화 프로필

중국 동녕현 조선족소학교 교사.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연변조선족 자치주 아동문학 학회 회원. 
흑룡강신문사 여성수필 공모 동상, 2012년 한국신춘문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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