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랜 세월 속에 묻혀있던 희미한 기억이 핏빛을 튕기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누군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잊고 산 기억을 되살려 존재와 존재의 뜨거운 만남의 기록... 내가 살던 세린하 강변엔 유년의 꿈이 흐르고 있고 아름다운 강성(江城)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숨쉬고 있다. 글을 쓸 때면 나는 가끔 영화를 보는 듯이 리얼한 영상 하나를 찾기 위해 오래 오래 끙끙 앓을 때가 많다..."

-‘칵테일은 어떤 맛 일까’ 수필집에서

류재순 작가의 수필집 <칵테일은 어떤 맛일까>의 출판기념회가 지난 2일 서울시 대림동 소재 대림연회루 4층 홀에서 열렸다. 

축하 꽃다발을 받은 류재순 소설가 

이에 앞서, 지난 8월 20일에 재한동포문인협회에서는 별도로 류재순 작가 수필 출간 기념식을 갖고 특별히 류작가의 창작생애를 소개한 동영상을 제작해서 영상을 상영하고 시낭송협회에서 류작가를 위해 시낭송과 노래 공연 등을 가졌다. 

류재순 작가는 인사말에서 "시간을 내어 동영상까지 제작해 준 김경애 회장과 평소 많은 성원과 축하를 해주신 회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며 "우리 작가들에게는 글로 무엇인가를 이 세상에 토해 내야만 하는 마음의 멍에가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만 주어진 신의 선물이다."고 감회를 토로했었다. 

한편, 지난 9월 2일 류재순 작가의 수필집 출간 기념 좌담회는 기존의 동포사회에서 열리던 출간식과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선 중국동포들 만이 아닌 대부분 한국문인들이 자리를 채워주었고, 작가 영상 소개, 작가와의 대담 형식과 중국 전통 변검공연은 화려하고 이색적인 쇼를 하여 행사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칵테일은 어떤 맛 일까’ 수필집에서 류재순 작가는 “바랜 세월 속에 묻혀있던 희미한 기억이 핏빛을 튕기며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누군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잊고 산 기억을 되살려 존재와 존재의 뜨거운 만남의 기록... 내가 살던 세린하 강변엔 유년의 꿈이 흐르고 있고 아름다운 강성(江城)엔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숨쉬고 있다. 글을 쓸 때면 나는 가끔 영화를 보는 듯이 리얼한 영상 하나를 찾기 위해 오래 오래 끙끙 앓을 때가 많다”고 고백했다.

류재순 작가는 중국 조선족동포 출신 작가이다. 1980년대 초, 문화대혁명이라는 폭풍이 지나간 중국문단에는 상처문학(伤痕文学)이 해빙기를 맞아 봄 물살마냥 억눌려 있던 수많은 작가들을 배출하였다. 류재순 작가도 바로 그때에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의 중편소설 ‘송화의 푸른 물’은 도라지 문학 대상을 받으며 중문으로 번역되어 대륙의 많은 독자들을 끌어안게 되었으며, 중국의 유명한 산문작가이며 상해시 문련주석(文联主席)이었던 준청(俊青)의 높은 평어를 받으면서 성급(省级) 신문인 길림일보(吉林日报) 등 많은 중국 언론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1991년, 그는 국가급 중국작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문화관에서 조선족 문체활동 추진과 문학창작인재를 발굴, 배양하는 공직원으로 종사하는 한편, 왕성한 개인·창작 활동을 펼쳤다. 1991년 그의 중단편 소설집 ‘여인들의 마음’이 국가출판계획에 편입되어 북경민족출판사에서 출판되었으며 그해 국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1992년에는 서울의 ‘과학과 사상’사에서 역시 중단편소설집 ‘홀리워 가는 처녀’가 출판되었다.

박동찬 사회자(오른쪽)과 대담을 갖고 있는 류재순 소설가. 
박동찬 사회자(오른쪽)과 대담을 갖고 있는 류재순 소설가. 

그 무렵 그는 북경에서 열린 ‘세계 민족문학 발전을 위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여 한국, 일본, 미국 등 지에서 온 유명한 작가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하여 우리 민족 문학의 글로벌적인 발전과 목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으며, 연이어 길림성에서 열린 과외작가 대표대회에도 참석하여 다른 민족 작가들과도 연대를 이룰 수 있었다.

그후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재한동포문인협회 제2대 회장을 맡으면서 하나의 총괄적인 활동체제였던 협회에 소설분과, 수필분과, 시분과 등 장르별 조직체제를 만들고 해마다 분과별 전문 교수님들을 초청하여 문학창작특강을 개최하는 등 한국사회에서의 동포문학과 동포작가들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한몫을 했다. 

류재순 작가는 여러모로 한국사회와의 연대에도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의 수필 ‘가을의 향연’은 길림신문 해외판 우수상을 받았으며 소설 ‘하얀무지개’는 설원 문학상 소설 대상을 받았고, 소설 ‘2006년, 그해 겨울’은 도라지 조선족 해외문학상을 받았다. 또 일본 도꾜에서 열린 세계조선족문화예술대축제 글쓰기 대회에서 특별 공로상도 받았다. 

좌담회 후 중국 변검공연.
좌담회 후 중국 변검공연.

뿐만 아니라 수필 ‘장미의 얼굴’은 한국문예작가협회의 수필 대상, 시 ‘사랑 그래프’는 아태문화예술 총연합회에서 개최한 ‘미주, 서울 비엔 날레’ 문화예술아트페어 전시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또 2022년에는 한국문화예술평론협의회에 제24회 ‘특별예술가’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리게 되었다.

현재, 류재순 작가는 재한동포문인협회 명예회장으로서, 중국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남북문화교류 위원, 아태문화예술 총연합회 수석부회장, 한국공무원 문인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류재순 작가의 새로운 활약을 기대하면서 그의 시 ‘가을에 젖어’로 마무리해본다. 

 

가을에 젖어

                    류 재 순

이렇게 맑은 하늘에
이렇게 아름다운 단풍 속에
이렇게 풍성한 황금빛 들녘 앞에서

말랐던 내 마음은 
끝없이 젖어간다
무시로 차오르는 감성의 물빛에
채색 한 방울 튕겨 와도
온통 물 들어 그림이 되는…

바람이 불어 온다
추억의 작은 옹알이 귓불을 스친다
봄빛에 피어나던 약속의 씨앗들
여름날에 얼마나 비등했던가

끝없이 젖어오는 이 가슴에 
작은 쪽배 하나 가만히 띄워
사색을 싣고 흘러가고 있을 때
내 눈에 안겨오는 헐 벗는 가을나무
무성했던 집념들이 떨어져 나가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