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시는 엉뚱한 발상에 비트는 요령이 내재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다운 시를 쓸 수 있다. <이명철> 

 

▲ 이명철 약력: 중국 서란시 자경툰 출생.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현재 경기도 기흥시. 1990~1992년 북경무장경찰, 2002~2007년 대련 외국어강사,  단편소설 '1987년 귀향길(처녀작)', '눈은 올해도 내린다'. '사랑꽃 한 묶음', '신병련 에피소드' 등 발표.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1.

길 떠난 사람들
 


 
누구는 가죽을 남기고
누구는 이름을 남기고
잉태될 때부터 소풍의 시간을 목에 걸고 온 사람들
죽음으로 향한 길우에서 표정들이 다양하다
 
우리처럼 언성을 높혔다가
얼굴이 울긋불긋 했다가
어느 순간 입을 닫고
긴 수면을 취해버린 고인의 자그마한 언덕에서
풀 한포기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삶이 행복하냐고
 
스쳐지나 간 눈빛 하나로
무수한 불면의 밤들이 오고
그 불면의 밤들이 낳은 감동이
아침 태양을 불러왔다
 
가던 길을 멈추고
하품하고 있는 구름 몇송 이 휘젓어 본다
하늘은 그대로 푸르고
그 하늘위로  죽음을 망각한 새때들이 춤을 춘다

 


2.

환자

 
      
그 고상한 것들이 사랑을 만나면서부터 퇴색하기 시작했다
 
천부의 기질이 알콜의 힘 없이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난 먼가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알았다
 
천만번 후회와 맹세는 언제나 내가 진지하게 응했던 게임이 끝난 후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세속의 속물들이 부러웠다
 
따뜻한 밥 한공기와
화려하지 않는 풍경이 어쩌면 삶의 전부일수도 있다
 
70억 동족을 곁에 두고도
하나의 그림자만을 찾아 떠난 동냥의 길
그 길 위에 차가운 시선들로 꽉 차 있다


 
 
3.

파괴된  몸짓 
         


방문을 닫을 때마다 누군가
내 뒤를 바싹 따라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내 동년이다
 
우뚝 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지진으로 화풀이하는 이 땅의 스테리스와
사정후의 몸 떨리는 허무감이
굳어진 허울을 벗겨왔지만
참,  왜 이세상에 귀신은 없는걸까
 
등을 쳐 간을 빼먹고
하트 하나를 호주머니에 넣은
신사와 부딛칠 때면
순수했던 영혼은 알콜을 그리워하기 시작했고
나는 거기에 순응하여 술잔을 들었다
 
50도 안된 내 나이에 헛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바람같이 내 등뒤를 따라왔던
그 의문의 수수께끼는 이제 더 중요하지가 않다
 
얼마간이나마 남아있는게  이치가 아니냐며 세속이 나에게 점을 친다
내가 분명 떠나지 못함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이
 
 


4.

지렁이

 


 
주먹만한 세상에
버티고 설 자리 하나로
평생 어두움을 물고 춤춘다
 
귀를 자르고
눈은 꾀매고
오로지 피의 색깔만 고집해
 
그 흔한 뼈 한 토막 갖추지 못한 채
옹이 진 구석구석만 뚫어
 
순리인 듯 보송보송 피어난 꽃들이
철없는 웃음 짓네
 


 
5.

눈치보는 총알


 
       
 엄숙과 정의가 내 모습이다
 아군을 쏘자고 만들어진 총알은 없다
 
 배신하고 조롱하던 육신들의 손바닥에
 수년간 바닥에 깔려 있던 총알이 아니길
 
 세월이 흐르니 맑은 물에도 이끼가 끼구나
 
 누구의 품에라도 안기고 싶은 건
 누군가의 가슴을 뚫고 거기에 정착해 있는 것이 내 숙명 때문
 

▲ 혼밥(혼자 먹는 밥)을 먹는 것도 또 시 한 줄 건지는 작업...

 


 6.

자국
 
 
 
 우울할 때면 걸어 다니던 발자국들을 가져와 씻었다
 
 새끼 고사리만 하던 발자국이
 어느 듯
 내 힘에 버거울 정도로 커져 있었고
 그 큰 발자국들은 무엇을 밟고  다녔던지 잘 씻기지  않았다
 
 추위에 아랑곳없이 뜨는 해가  나를 다독여주지만
 숨쉬고 있는  자체가 부담이다
 
 상처받고도  애써 웃어주려 했던 얼굴들
 비속에서 건네주던 우산 하나
 
 보잘 것 없는 발자국에 큰 그릇을 담으니  아프다
 잘 씻기지 않는다
 


 
7.

표적


 
  저격수는  노숙자를 겨냥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총에 맞아 죽는 건 행복한 일이다
 
 컵 하나가 정의로 채워지기까지
 삶의 게임은 비열한 냄새를 풍긴다
 
 육체의 파산이 슬픔으로 떠난다 하여도
 따가운 피는 울먹임으로  약한 잡초를 키운다
 
 눈물이 없어  울지 못하는 이 세상  여기저기에서
 또 다시  총소리가 울린다
 


 
8.

피리  그리고  나


 
 
 똑 닮아 여덟 구멍으로 소리를 낸다
 짧은 소풍의 비장함이
 갸냘픈 음악으로 울려 퍼질 때
 괴로움은 잠시 자신을 잃는다
 
 마디마디 아픔이
 잊혀진 계절로 푸른 입사귀 그리다나면
 튕겨 나간 화음이 되돌아와
 생기잃은 눈시울을 자극한다
 
 얼마만큼 지나야 너 돌아서던 모습을 잊을까
 또다시 봄은 돌아오고
 꽃은 피고지고
 
 녹슬은 몸짓에서 사라져가는 이야기들
 너는 너 대로 여전한데
 


 
9.

칼 맞은 심장


        
 칼에 맞은 심장은 많이 아팠지만
 난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 기뻤다
 
 끊어진 혈관사이로 뿜어 나오는 피들이
 깊숙이  새겨진 수자들을 적셔주고 있었다
 그것은 후회와 반성속에서 살아온 괴로운 기록들이었다
 
 찢어진 속살사이로
 짧았지만 감동으로 전율했던 흔적들도 가끔 보였다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그것들은
 불긋다 못해 까맣게 타서
 심장 가운데 간직되어 있었다
 
 천국을 향한 수레바퀴가
 자갈밭 지나는 소리를 낸다
 거기에는 한 부름이 있다
 
 칼 빼지 마
 그러다가 죽어,,,
 
 


10.

못 질


 
 살다보니 언제부턴가
 내 두주먹에  못 한 주먹 쥐여져
 버리긴 아까워서 망치를 휘두른다
 니 가슴에
 내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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