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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회화와 조형의 예술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젊은 작가 홍경원

기사승인 2018.02.11  20: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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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경원 작가 작업실에서
[서울=동북아신문]  홍경원 Hong, gyeongwon
“모든 것이 늦되어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다.
입이 서툴러……행동이 기민하지 못하여……붓으로……헤라로……느릿느릿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양력>
국민대 TED 석사졸
개인전 1회, 단체전 다수
2016 경기노동문화예술제 수상
gyeongwon.h@gmail.com
instagram: gyeongwon_hong

   
▲ 고양이분재(Ca-tree), mixed media, 300x300x900mm

<작가노트>

35살의 나에게 작가란 무엇일까?…….

작가(作家)란 문학 작품, 사진,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란 사전적인 정의가 있다. 하지만 표면적인 정의로만 작품 활동에 임하는 작가는 드물 것이고 표면적인 정의로만 작가를 바라보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유려한 작품을 제작하고 뛰어난 마케팅 능력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작가에서부터 하루 하루가 힘든 이름없는 작가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자신들 고유의 ‘작가관’을 가지고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여 나아간다. 그렇기에 작가들을 대면할 때, 작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일차원적인 정의와 규정으로 작가들을 단정 지을 수 없고 그들이 짊어진 작업에 대한 십자가의 무게와 작품을 임하는 자세에 대한 무게 또한 가늠할 수 없다. “그들은 선구자가 되어 세상을 이끌 수도 있고, 투사가 되어 싸우기도 하며, 노래하는 새가 되어 노래할 수도 있다.”

   
▲ 그저 꽃일뿐(가변설치),resin, oil painting, 200x200x350mm

누군가가 “작가는 무어라 생각하느냐?”라 묻는다는 것은 “너가 짊어진 작가관은 무엇이냐?”,“너가 짊어진 작업에 대한 - 세상에 대한 십자가는 무엇이냐?”라고 묻는 것일 터이다.

35살을 묵은 현재의 나에게 작가에 대해 묻는다면, “작가란 대자연의 순리 속에서 태어난 - 보고 듣고 섭취하는 것에 따라 노래하고, 울고, 지저귀는 – ‘새들’과 같다”고 정의 내리고 싶다. 그들은 새들처럼 본능적으로 - 작품으로 노래를 하며 울며 지저귄다. 그들의 작품 또한 그들을 닮아 노래가 되고 곡(哭)이 되고 시(詩)가 된다.

   
▲ 안스리움, acrylic on canvas, 91.0x 72.7cm, 2016

나는 “한 마리의 작은 새다.”
나는 흙으로 노래하는 법을 알고, 붓으로 우는 법을 알고, 글로 지저귀는 법을 아는 헤라를 든 한 마리의 작은 새다. 나는 내 피(血) - 유전자에 기록된 목소리를 가지고 오늘을 노래하고 내일을 노래하고 삶을 노래한다. 세상이 즐겁다면 노래를 할 것이고, 세상이 슬프다면 울 것이다. 이것이 내가 35살의 오늘을 살아가고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작가에 대해 내린 정의 이다.
앞으로 어떠한 계기로 이 생각이 바뀌게 될 지는 알 수는 없으나 당분간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노래하고 울고 지저귀려 한다. (2015)

   
▲ 어느 뜨거운 여름날의 팬지, mixed media, 200x200x350mm

- Project No.1 꽃의 집 中
2016년 어느 날 화분을 보다가……

“내가 거주하는 장소는 12평 남짓. 그곳에는 2평이 못 되는 베란다가 있고, 그 곳의 한쪽 구석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밥사발만 한 용기에 담겨진 채 살아가고 있다. 어떤 계기로 나에게 들어왔던지 화분 속의 식물들은 내가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형태로 놓여져서 살아가야 한다. 본연의 의지에 반할지라도, 그것들은 나만의 관상식물로써 용기에 담겨진 채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식물을 기른다.‘식물을 자연으로부터 격리시켜 용기에 담아 곁에 둔다.’인간의 일차적인 욕구(식욕, 성욕, 수면욕) 이외의 이런 행동들을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할까? 끊임없이 식물을 사 모으고 관리하고 감상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나의 이런 행동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이를 갖지 않은 여성의 후손을 낳아 기르고자 하는 욕구가 식물에 전이 된 것일까? 신기한 풀들을 갖고자 하는 소유욕일까? 아니면 단순한 시간 때우기일까?

나는 의문을 가진 채 습관처럼 커피 한잔을 들고 베란다로 향했고 습관처럼 물을 주고 습관처럼 누렇게 뜬 잎들을 떼어 냈다. 커피를 다 마시고도 시든 잎을 다 때어 내고도 나는 위 의문에 적절한 해답을 찾지 못 하였다.

   
▲ 오! 나의 수줍은 씨클라멘(Cyclamen)_당신은 너무 아름다워 염려가 된다.

하지만 어떻든 간에 식물을 담아 기르는 것은 지극히 인간본위적(人間本位的)인 행동이며, 식물이 담겨지는 용기는 식물에 대한 인간의 행태가 투영된 물건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식물에게 제재를 가하는 인간의 행태를 반영하여 용기의 형태가 이루어지며 용기에 담겨진 식물 또한, 인간이 원하는 인위적인 형태로 조형되어 질 수 있다고 보게 되었다.

베란다 오른쪽엔 집 뜰이 선물로 받은 꽃 화분이 놓여있고, 거실에는 공기를 청정하게 해주는 식물이 침대 모서리 한 구석에 놓여 있으며, 미세먼지를 먹는 이끼들은 창문 문틀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아……안온하구나……!

   
▲ 해바라기, acrylic on canvas, 91.0x 72.7cm, 2016

하지만 이들은 집 뜰이 선물 용도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공기를 청정하게 해주려 우리 집에 온 것이 아니며, 미세먼지를 먹기 위해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때가 되면 분갈이 해주고 해가 드는 곳으로 옮겨주고 비료를 주는 나의 호의적이고 책임감 있는 행동들은 인간의 탈을 쓴 나의 인간적인 생각의 범주에서 나온 것이었고, 각양각색의 알록달록한 화분들은 인간들이 그들에게 가하는 힘을 형상화 해 놓은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이 화분들이 식물들에 대한 나의 억압과 나의 위선의 결정체인 것 같이 느껴져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엄습해 왔다. 이들은 나에게 더 이상 관상식물이 아니었기에 화분을 봐도 즐겁지 않아졌다. ‘아……커피가 쓰다……작업이나 하자…….’

   
▲ 황조가(黃鳥歌), acrylic on canvas, 91.0x 72.7cm, 2016.

   
▲ 홍경원 작가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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