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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작가포럼80/문학작품특집]우광훈의 단편소설 '커지부리(克己復禮)'

기사승인 2019.07.04  16: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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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광훈(禹光勛) 약력 : 단편소설 《외로운 무덤》으로 등단. 소설집으로 《외로운 무덤》,《가람 건느지 마소》, 장편소설 《흔적》등.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연변자치주정부진달래문학상, 길림성정부《장백산》문예상, 중국작가협회소수민족문학준마상, <<천지>>문학상 등 십여차 수상.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연변작가협회창작연락부 주임 등 역임. 현재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문학학회 회원, 길림성정치협상위원회 제11기 위원. 연변소설가학회 회장.
 
 
[서울=동북아신문]40여 년 전 일이니까 묵은지 냄새가 나는 이야기다. 내가 하방(下放, 문화혁명시기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지식인과 공무원들을 농촌으로 추방함)을 한 아버지를 따라 하향이라는 것을 하여 내려간 시골마을에 커지부리, 즉 공자님의 말씀중의 “극기복례(克己复礼)”라는 별명을 가진 바보 멍청이 홀아비가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 69년 겨울, 나는 오동성의 오지라도 세상 빛이 비쳐보지 못한듯 한 시골중의 시골로 하향이라는 것을 하였다. 그것도 아주 명분이 없는, 도시에서 쫓겨난 지식인 아버지를 따라 하방이라는 것을 따라한 하향이었기에 지식청년이라는 감투를 쓰기에는 무엇한 그런 하향이다.

우리 식구가 내려간 마을은 이름도 괴상망측하게 대황구라는 곳이었다. 고중을 졸업한 형님이 황구라니? 무슨 누렁이들이 사는 곳이야? 그것도 큰 황둥개라니? 했다. 실은 개간이 되지 않은 골짜기라는 뜻의 황구(荒沟)를 황둥개라는 황구(黃狗)라고 해석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대황구를 큰 황둥개, 아니면 큰 누렁이라고 불렀다. 어디서 사우? 하면 누렁이동네에서 사우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서로 쿡쿡 했다.

이 큰 누렁이동네에 모두 28호가 살고 있었고 우리가 가서 유일한 조선족가족 한호가 불어 29호가 되고 그중 홀아비는 8호였다. 이 8호중에 왕극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나 불리운 적이 많지 않고 극기복례라는 별명이 더 불리운 홀아비가 있었다. 처음 왕극성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머니는 극성이라니? 무엇에 그렇게 극성이래? 그것도 왕창 극성이니? 하고 푸득 하셨다.

왕극성은 동네에서 바보취급을 당하는 사람이었는데 마을 사람들 말로는 머리 알에 돼지 똥이 들어차서 미련하다고 했다. 하긴 팔부라고 하기에는 똑똑한 편이었고 그렇다고 정신이 똘똘하다는 소리를 듣기에는 머리가 갸웃했다. 그런데 바보면 바보라면 되겠건만 그것도 머리 알에 돼지 똥이 들어차서이고 왜 기어이 돼지이 배설물인지 알고도 모를 노릇이었다. 사실 왕극성(王克成)이란 이름은 중국 사람의 이름 중에서도 귀(贵)자나 발(发)자가 붙은 이름처럼 촌스러운 이름이 아니었다. 아마 부모나 문중에 글깨나 깬 사람이 있었던 모양, 언문의 냄새가 나는 이름이었다. 다만 이름이 좋아 머리도 좋은 것은 아닌가보다.

처음 왕극성을 본 순간 나는 공원에서 본적이 있는 고릴라를 생각해냈다. 종래로 이발기의 맛을 못 보았는지 무딘 낫으로 가을을 한 밀밭의 그루터기 처럼 머리털 모두가 고슴도치 가시처럼 일어서있었고 얼굴은 검은 때가 끼여 얼굴의 바탕색을 호미로 긁어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한평생 물기가 얼굴을 스쳐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키는 평균치를 넘는 키였으나 구부정하게 주눅이 들어있어 더구나 판에 박힌 고릴라의 꼬라지었다. 초봄이여서 다른 사람들은 솜옷을 벗었으나 왕극성은 겨우내 입고 있던 솜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누더기가 되여 버리기 직전인 솜옷은 솜이 나가지 말라고 벼라 별 천을 다 동원해 기웠는데 그중에는 마대조각까지 있었다. 단추도 없는 솜옷은 노끈으로 허리를 질끈 동였고 솜옷 한 벌만 입고 있어 움직일 때면 얼굴색과 다름없는 가슴이 숨바꼭질을 해댔다.

   
▲ 훈춘 방천에서 3국 국경을 바라보며

후의 이야기지만 왕극성에게 《극기복례》라는 별명이 붙은 데는 그럴만한 세상의 일화가 있었다. 원래의 별명은 중국말로 쉬뤄즈(虚骡子)였는 데 나의 형이 재미있다고 헛 노새라고 번역을 해 불렀다. 노새는 원래 성의 구실을 못하는데 그것마저 헛것이라니 별명도 유별나고 웃기게 지혜가 숨어있었다. 그런데 극기복례라는 별명이 붙여진 후로는 원래의 별명보다 극기복례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이 별명이 붙여지게 된 일화도 거들만 하다. 그때 임표라는 위대하고 영원히 건강하셔야 할 공화국의 부주석이 몽골의 어느 초원에서 비명 객사하자 《비림비공》운동이 시작이 되였다. 즉 임표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하는 운동이었다. 일 밭에 가서는 《림표를 타도하자》, 《공자를 타도하자》라는 구호를 부르고 저녁이 되여서는 남포등을 켜놓고 공사의 간부나 되어 보이는 사람이 사원들을 모아놓고 학습을 시키고 임표가 어떻게 나쁘고 공자라는 사람이 참으로 더러운 사상을 만들었다는 식의 강연을 해댔다. 임표가 어떻다고 하면 그래도 싱거운 머리라도 끄덕이는 사람이 있었으나 공자가 어떻다고 하면 저 사람이 정신이나 있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신문지에 만 토종담배들을 빨아댔다. 어느 날 사원들의 정신이 흐리마리해서 공사간부의 일장 연설이 끝나기를 기다리는데 머리를 떨구고 쿨쿨 하던 왕극성이 갑자기 머리를 들더니 세상이 놀랄만한 소리를 했다.

《안연문인, 자왈. 극기복례위인. 일일극기복례, 천하귀인언, 위인유기, 이유인호재?(颜渊问仁。子曰:‘克己复礼为仁。一日克己复礼,天下归仁焉。为仁由己,而由人乎哉?)》

처음엔 사람들은 무슨 말 방구 같은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왕극성을 쳐다보다가 바보 왕극성이 공자의 말을 외웠다는 것을 알고는 푸 하하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뱃가죽이 흔들흔들하게 웃어주고 나니 잠기가 쏙 빠져버렸고 공사의 간부도 입 가죽이 째지게 웃고는 웃은 값으로 일찍 비판회의를 끝냈다. 그런데 며칠 후부터 사람들은 왕극성을 보면 누구라 없이 어이, 커지부리 하고 불렀다. 이봐, 커지부리, 곡괭이를 가져와. 쓰발, 커지부리, 귀때기에 수퇘지 물건이 들어갔어? 왜 사람 말 알아 못 들어? 했다. 실은 어느 마을에서 초등학교교원을 하다가 여자애들의 발육이 안 된 곳을 만진 덕에 3년 실형을 받고 감옥에 갔다가 이 마을에 데릴사위로 온 교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교충은 까불고 싸가지가 없는 형에 속하는 인물이었는데 그날 《비림비공》회의에서 왕극성이 공자의 극기복례라는 구절의 원문을 읽는 것을 보고 배때기를 두드리며 웃은 사람 중 하나였다. 이튿날 그는 왕극성을 보자 이 얼간아, 커지부리! 하고 소리쳤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원래의 《헛노새》라는 별명을 버리고 극기복례라고 불렀다. 왕극성 자신도 극기복례라는 별명이 좋은지 싱글싱글 했고 그의 이름자중에《극》자가 있었기에 쉽게 이 별명이 굳어질 수 있기도 했다.

왕극성은 그날 《비림비공》회의 때문에 극기복례라는 별명을 달게 되였고 그 공사의 간부는 공사로 돌아가 사원들 학습을 잘 시켜서 바보 왕극성까지 공자의 원문을 읽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회보를 했다. 후에 그는 이 공로로 강연을 다녔고 썩 후에는 현의 지도급 어른으로 승진을 했다.

극기복례 왕극성이 사는 집을 처음 본 것은 내가 형의 말대로 황둥개동네서 살아 일 년이 거의 된 때였다. 그날 무슨 일인가 있어 왕극성을 찾게 되였는데 마을 뒤쪽에 있는 그의 단칸집에는 창문이 없었다. 문을 여니 돼지죽이 끓는 냄새가 진동하고 컴컴한 부엌에 엎드려있던 네눈박이 얼룩개가 엎드린 채로 으르릉 했다. 왕극성이 키우는 개 얼마즈였다. 얼마즈(儿马子)란 숫 말을 지칭하는 것으로 종마 또는 씨받이 말이라는 뜻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즈는 말하고는 십만 팔천리나 멀게 생긴 동북지방의 토종개였고 덩치가 크고 힘도 세고 미련해 보이는 데가 있었다. 그런데 왜 말하고 연계되는 얼마즈라고 이름을 지었는지는 왕극성만이 알 노릇이었다. 얼마즈는 한번 으르렁 하는 것으로 사람이 왔다는 것을 알리고는 다시 머리를 바닥에 대고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창문이 없다보니 방안은 완전 까막 나라였다. 인기척을 듣고 왕극성 나왔으나 방안의 검은 배경으로 하여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릴뿐이었다. 온갖 잡동사니의 곰팡이냄새와 장작의 연기가 기어 다니며 남긴 흔적 냄새와 왕극성의 시금털털한 냄새에 절은 퀴퀴함이 진동하여 집안에 머물 수 없어 나는 밖으로 나왔고 따라서 극기복례 왕극성이 나왔다. 왜 창문을 다 막았어? 도둑이 드우. 왕극성의 대답이다. 사실 이 시골에 도둑이 있을 이유도 없고 더구나 그에게 도둑질을 할 만한 물건도 없었다. 나는 바보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생산대장이 맡긴 용건을 말했다. 커지부리, 오늘은 밭에 가지 말고 마구간에서 깨를 볶으라구. 왕극성이 끙 대답을 하면서 나를 흘긋 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눈의 흰자위가 유난히 크고 희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딘가 섬뜩한 데가 있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 왕극성은 50년대 상반기에 이 마을에 왔다고 했다. 그의 누이라는 사람을 따라 왔는데 그 누이가 이 지방의 지방병인 극산병(克山病)으로 죽고 남편이라는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려 그의 출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어도 바보이다 보니 고향의 방향이 어딘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순간순간 나오는 산동말씨에서 고향사투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산동에서 온 사람들이라 산동 사투리가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상한건 산동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긴 동북지방이니 동북말씨를 배운 것도 당연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 왕극성이 볶은 들깨에서 사달이 생겼다. 시골에서는 성축이 끄는 마차가 올라가기 힘든 산비탈 밭에는 조이를 심고 조이와 함께 비료로 천방지축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들깨를 볶아 조 씨와 함께 뿌렸다. 그러면 조이 쌀의 맛이 고소하고 풀기가 있어 일품이 되고 조이 짚도 말이 잘 먹었다. 뭐 말의 겨울사료로는 일품이라는 말이 되겠다. 말을 주요한 성축으로 쓰는 이곳 사람들은 말에 대한 애정이 유독했다. 그래서 조이는 어느 해든지 꼭 심었고 조이 씨를 뿌릴 때면 꼭 볶은 들깨를 함께 뿌려 비료로 했다. 그런데 이십 여일이 지나 조이 밭에 가보니 조이와 들깨가 함께 자라 완전 풀밭이 되어있었다. 흑산전투에서 기관총탄을 맞아 왼팔을 잘 쓰지 못하는 강대장이 왕극성을 앞에 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왕바(자라) 돼지 같은 얼간이 바보야, 깨 닦는 것두 일이라고 못하는 거야? 어이구, 저것이 어느 년의 밑구녁에서 나왔는지, 개라도 낳았으면 집이라도 지키지. 말이 안 나간다, 말이. 이 멍청아! 이 바보 커지부리야! 강대장이 퍼붓는 욕설이 줄을 잇는데 그때에야 욕을 잘하는 것도 그런 멋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 한국의 리상규시인과 소설가 리혜선씨와 함께 중조국경에서

그 후 조이 두벌김에 같이 돋은 들깨를 솎아내는데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 밭이랑에 쭈크리고 앉아 조이솎음을 끝내자 무릎이 벌겋게 익어있었다. 사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왕극성을 거들며 김이 끝날 때까지 네에미 씨발을 뿌리고 다녔다. 그때마다 왕극성은 흰자위가 많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억울하다고 투덜거렸다. 제밀 씹같이 내가 아니라구...

후에 알고 보니 왕극성이 억울한 것은 사실이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그날 그는 볶은 들깨들 마대에 담아 마구간의 여물 삶는 방에 두지 않고 빨리 식으라고 마구간의 구유 밑에 밀어 넣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알리가 없는 산동에서 온 망류(盲流, 뜨내기)가 당연히 마구간 가마가 있는 곳에 두었을 거라 여기고 아직 볶지 않은 들깨마대를 산으로 메고 갔고 그대로 조이 씨와 섞어 씨뿌리기를 했던 것이었다. 물론 그때가 지나자 사원들을 그 일을 거들 때마다 왕극성을 손가락질하며 키득거렸다. 네 다 먹으려고 그랬지? 그러길래 그날 너 입에서 나는 들깨냄새를 맡고 암코양이들이 따라다닌 거야. 극기복례는 목을 비틀며 응수를 했다. 너들은 수캐들이 따라다니잖아. 시부럴 것들이...

가족이 있는 마을 사람들은 어느 집이나 할것 없이 돼지를 키웠으나 홀아비들은 거의 키우는 법이 없었다. 혼자서 먹는 음식으로 돼지를 키우기에는 벅찬 것도 있었지만 돼지죽을 주고 우리를 치고 하는 것은 역사로도 웬만한 역사가 아니어서 홀아비로서는 일손이 모자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왕극성은 해마다 돼지를 키웠다. 설이 되면 다른 집처럼 잡아서 설을 쇠는 것이 아니라 공소사(供銷社, 공소 합작사의 약칭)에 끌고 가 팔아 얼마든지 돈을 만들었다. 왜 그러냐고 하면 시물시물 웃으며 돈이 더 좋단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바보니까 어처구니없다고 혀를 찼다. 죽으면 누굴 주려구? 커지부리 귀신색시라도 얻을 거야? 그러면 극기복례 왕극성은 삐죽 웃었다. 산동에 가 배가 이만한 여자를 데려올 거우. 떡치기 좋은 여자 말이우. 히히. 여자 말이나 색시 말이 나오면 왕극성은 기분이 둥둥 뜨는 모양이었다. 하하, 저게 바보라두 여자 맛은 아는가 보지? 마을 사람들은 쿡쿡거리며 이봐, 헛노새 커지부리, 내 색시 하나 소개해 줄가? 입술하고 코가 붙은 여자 말이야? 그러면 극기복례는 그게 돼지지 사람이야? 하고 대답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게 바보 구 헛노새라도 여자를 알기는 아는 모양이야. 하며 음탕한 짓거리를 슬슬 뱉아냈다. 배꼽에 구멍을 낼 연장이 있어? 하하하...

재미있는 것은 왕극성이 우리 집과 인연이 된 것도 이런 시시껄렁한 일 때문이었다. 그날은 초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날이어서 일 밭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황경피나무로 담배재떨이를 만든다고 뚝딱거리고 나는 집체호(集體戶, 당시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농촌으로 보내 집체하숙을 하게 함)의 친구들에게서 후무려온 푸시킨의《예부기니 오네긴》을 읽고 어머니는 이런 쉬쉬한 날이면 하는 옥수수 죽을 끓이느라고 부엌에서 부시럭 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요란스러운 욕설소리와 함께 풀쩍풀쩍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 앞에서 투닥투닥 무엇을 두드려 패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죽는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사람 살리우! 사라므 사알리우-!

밖에 나가보니 야단은 야단이었다. 마을에 애가 많기로 저그만치 아홉이나 되는 소경이라는 사내가 길다란 호미를 들고 왕극성을 찍어대고 있고 그 옆에서는 작달막한 키의 풍귀라는 남자가 장작개비를 휘두르고 있었다. 왕극성의 이마에서는 땟국에 절은 검붉은 피가 흐르고 우리 집 닭장에 기어들기라도 하듯 닭장 문에 코를 박고 웅크린 채 얻어맞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후닥닥 뛰쳐나온 나를 따라 나온 아버지가 그 광경을 보고 점잖은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무슨 일인데 사람을 패면 쓰나?

소경이라는 사내가 두드리기를 멈추고 왕극성을 손가락질 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저 미친 바보 얼간둥이가, 씨발, 커지부리 헛노새같은 게 훔쳐봤단 말이우. 제길, 주제에 여자는 알아가지고...

사연은 이랬다. 소경의 아내는 애를 많이 나은 탓인지 갑자기 근육이 불어나는 병을 앓고있었다. 시골사람들은 귀신이 핏줄을 따라다녀서 그렇다고 했다. 전에는 무당을 불러 살풀이를 하면 나았다고 했으나 문화혁명이 일어난 후로는 무당의 짓거리는 무조건 미신으로 되여 무당이란 말을 해도 죄가 되였다. 그래서 소경이는 자기가 집적 핏줄을 따라다니는 귀신을 잡았는데 이상하게도 넓적다리에 있던 혹을 움켜쥐면 어느새 잔등이나 팔에 가서 불어났다. 믿거나 말거나 그 혹은 온 몸의 여기저기로 움직여 다녔다. 마을의 의사도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고 평생 편집선생으로 일하여온 아버지도 글쎄 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 귀신을 잡으려니까 소경의 여편네는 발가벗어야 했겠고 그 위대한 귀신잡기 작전을 보고 발길이 떨어지지 않은 왕극성이 한바탕 얻어맞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싱거운 것은 풍귀라는 사람이 더 호기를 부리고 장작개비로 무자비하게 왕극성을 두드려 패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동북지방의 시골에서는 애들이 많고 생활이 어려운 집에는 "도우미"라는 각색을 하는 남자가 함께 사는 풍속이 있었다. 중국말로는 라방토우(拉帮套)라고 불렀는데 삼두마차에 짐이 많거나 길이 험하면 옆에 말 한필을 더 메우고 라방토우라고 불렀다. 시골에서는 그렇게 사는 남자를 비유하여 라방토우라 했다. 우리말로는 도우미 또는 붙어 살이 등 뜻이 되겠다. 대개 그런 남자는 장가를 가지 못한 홀아비로 그 집의 자식 하나를 양자 또는 양녀로 삼고 그 집에서 먹고 자고할 수도 있었고 따로 살아도 그 집의 여자를 아내처럼 데리고 잘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풍기문란이고 전근대적인 풍속이라고 야단을 맞을 일이였지만 그때까지도 마을에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도시에서 자란 우리들만이 혀들 내두를 뿐이었다. 그런데 돼지주인보다 돼지몰이가 더 으스댄다고 풍귀가 장작개비를 휘두르며 더 날뛰고 왕극성은 죽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왕극성은 흙탕에 닭똥에 범벅이 되여 펑펑 울어대고 그 통에 마을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고 우리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아버지가 나서며 풍귀의 손목을 잡았다. 그래두 사람인데 그렇게 죽게 치면 쓰나? 그만하게.

풍귀가 펄펄 뛰었다. 소 짝불알 먹을 새끼. 눈알 시퍼래서 봤다구요. 저런 바보 멍청이 커지부리는 죽게 맞아야 버릇이 떨어지거든! 이때 언제 왔는지 모를 강대장이 씹할을 내뱉었다. 이봐 풍귀, 그 여편네 홀딱 벗은 거 뭐 두 사람 같이 봤잖아. 바보 한사람 더 본다고 씨발 눈자리 나나? 지랄하고 자빠졌네!

강대장의 말에 풍귀가 바보 궁상을 지었고 그 말뜻을 알아들은 사람들이 푸하하 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후에 마을의 젊은 친구들이 심심하면 그 일을 꼬챙이에 꿰들고 왕극성에게 물었다. 이봐 정말 봤어? 어떻게 생겼더랬나? 그러면 왕극성은 눈알을 뒤집으며 흘겨댔다. 불알같이, 엎드렸는데 내 눈이 뭐 투명 눈이야? 보긴 멀 봐! 그래도 엉덩이야 봤을 거 아니야? 까짓 거야 네놈 거 하구 같잖아! 그러면 젊은 친구들은 좋다고 키득거리고 슬슬 상상을 끌어내면서 걸쭉한 소리를 뱉어댔다.

기음이 끝나고 농한기가 왔다. 집집마다 호미를 잘 씻어서 처마에 걸었고 이때쯤이면 산에 무진장한 버섯이고 약초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였다. 시골사람들이 작은 가을이라 말하는 소추수(小秋收)의 계절이였다. 집집마다의 마당에서 버섯이며 개암들이 마르고 심심하면 아직은 덜 여문 잣송이를 따다가 시퍼런 물이 오른 잣송이를 그대로 부엌에 넣고 구워서는 입을 거멓게 칠하면서 툭툭 잣알들을 까대기도 했다. 농한기의 계절이라도 편하면서도 부지런한 사람은 재촉하는 계절이었고 가족이 없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어쩌다 허리를 펴보는 계절이었다. 아침부터 우리 집 마당에는 젊은 친구들로 들썽거렸다. 알을 낳으려는 암탉들이 눈치를 보며 꼬꼬댁거리고 낯선 사람들이 왔다고 집에서 키우는 거위들이 목을 빼고 휘저으며 꽥꽥거렸다.

형이 젊은 친구들의 머리를 깎아준다고 약속을 해놓은 까닭이었다. 형은 기러기목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동네에 집체호로 갔다가 우리 집이 농촌으로 오자 이곳 집으로 온 것이었다. 오면서 집체호에서 쓰던 낡은 수동식 이발기를 가져왔는데 머리를 깎을 때면 뚝뚝 물어 떼서 고역을 치뤄야 하는, 그런 페품 수구소로 가기직전의 이발기였다. 재봉틀에 쓰는 윤활유를 쓰면 그런대로 덜 물어 뗄 거지만 재봉틀을 구경하기조차 어려운 때라 형은 콩기름을 싸리꼬챙이로 찍어서 이발기의 날에 대고 푹푹 찍고는 꾹꾹 손잡이를 눌러댔다. 별명이 얼룩이꼬리라는 산동에서 온 뜨내기가 선수를 쳐서 첫 사람으로 나무걸상에 앉았고 형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오만상을 찡그려댔다. 얼룩이꼬리라는 별명은 그가 무슨 피부병을 앓고 있는지 얼굴이 얼룩얼룩하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었다. 오소리기름도 처발라보고 두더지껍질도 발라보았으나 허연 버짐은 그 얼굴에서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얼룩이꼬리가 구사일생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을 펴는데 어느새 왔는지 극기복례 왕극성이 얼룩이꼬리 엉덩이를 밀어내며 자기 엉덩이를 나무걸상으로 들이밀었다. 나두 깎아줘. 형이 끔쩍 하더니 푸득 했다. 이건 낮으로 깎아야 잖아. 왕극성의 머리는 종래로 이발기의 맛을 본적이 없었다. 가위로 석둑석둑 깎아서 서툰 낮 질을 한 밀밭처럼 길이가 고르지 않았고 얼마나 머리를 감지 않았는지 땟국에 절어 멧돼지 털처럼 곤두서있었다. 처음이우, 깎아주우. 형은 안됐는지 이발기를 왕극성의 머리에 대고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왕극성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이구, 사람 잡네! 형은 손을 멈추고 왕극성의 머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봐, 이게 사람머리야? 멧돼지 대가리지. 작년에 탈곡할 때 들어간 조가 그대로 있잖아. 며칠 적셔놓으면 조가 자라게 생겼네. 그러자 옆에 있던 젊은 청년들이 왕극성을 놓고 까불었다. 조가 자라면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되겠어. 십년 묵은 멧돼지는 등에 나무가 자란대. 너두 멧돼지네. 하하하 야 숫퇘지, 멧돼지, 커지부리야...

이발기가 콩기름 한 국자는 먹고 왕극성이 사람 죽인다고 이십분 동안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왕극성의 머리는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추었고 사람의 냄새가 났다. 보기에 민망했는지 형이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세숫대야에 물을 퍼가지고 나왔다. 머리를 깎았으니 씻어야지 않아. 여기 앉어. 왕극성이 머리를 비틀었다. 싫어. 섬뜩하잖아. 안 씻는다니까. 그러자 형이 세숫대야를 들어 왕극성의 머리에 대고 부었다. 왕극성은 부지깽이에 맞은 개처럼 후닥닥 튀어 일어났다. 사람 죽일려구? 그러는 왕극성을 형이 끌어다 세숫대야 앞에 꿇어앉혔다. 그리고는 젖은 머리에 누런 빨래비누를 대고 문질러댔다. 먹물 같은 거품이 부글거렸다.

여러 번 물을 갈며 머리를 감기고 나자 어머니가 따뜻한 물을 물통에 담아가지고 나와 형에게 말했다. 씻기는바에 그 등허리도 좀 밀어줘라. 때가 가죽이 되였구나. 형이 웃으며 왕극성이더러 너덜거리는 옷을 벗으라고 했다. 그러자 왕극성이 펄쩍 뛰었다. 나서부터 안 씻었수. 아까운 걸 벗기면 겨울에 추워서 안 된다구. 그러든 말든 형이 달려들어 웃통을 벗기려하자 왕극성은 저만큼 달아났다. 그러는 왕극성을 주위에 청년들이 모여들어 비틀어 웃통을 벗기고 물을 끼얹었다. 왕극성이 으흐흐 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왕극성의 개 얼마즈가 옆에서 풀쩍풀쩍 뛰면서 주인의 다리를 감싸고 돌아댔다. 청년들이 발로 얼마즈를 걷어찼다. 이 개새끼, 바보 멍청이 주인이라도 한편이네. 조선족들은 개고기를 먹는 거 알지? 아양 떨다가 잡아먹힐 줄 알아. 젊은 친구들이 슬슬 걸쭉한 소리를 뽑기 시작했다. 이 얼마즈야, 너 왕서방하고 같이 자는 거 맞지? 왕극성이 입안에 들어오는 물을 푸푸 뿜어대며 대들었다. 씨발, 얼마즈 수캐인거 몰라? 너들 키우는 암캐는 다 너희들 마누라니?

마당이 시끌벅적하게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머리를 감기고 세수를 시키고 대충 웃통의 때까지 밀어주니 바보 멍청이 왕극성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였다. 어머니가 나오시더니 왕극성을 보고 혀를 찼다. 멍청이라 두 신수는 멀끔했네. 극성은 극성이다. 사람 사는 게 신기하구나.

하긴 그렇기도 했다. 얼굴도 허여멀쑥하고 눈도 큼직하고 코도 두두룩하고 미끈했고 지금의 표준이라면 젊은 시절에는 미남이란 소리도 들을만한 상이였다. 아하, 이봐 바보 커지부리야, 장가를 가도 되겠다. 색시 하나 소개해 줄가? 왕극성이 좋아서 히히 했다. 네 누이나 달라. 애기만 풍풍 잘 낳는 누이가 좋더라. 이 바보가 암컷 냄새를 알기는 하는 모양이네...

그 후로부터 왕극성은 드문히 우리 집 마당을 깃숙거렸다. 그때마다 얼마즈가 눈치를 흘끔거리며 따라왔고 집에서 키우는 거위들은 면목을 익혀서 얼마즈의 입에 붙은 먹거리를 뜯으며 동아리가 되여 잘 놀아주었다. 아버지가 그런 왕극성을 보며 말했다. 저게 그래도 사람이라고 사람 대접하는 건 알고 있구나. 궈테(锅贴)라도 하나 가져다주어라. 혼자 사는 바보가 먹을 거나 제대로 먹고 살겠니? 하긴 누가 보고 낸 소문인데 왕극성은 돼지죽을 끓일 때 감자도 그대로 넣고 삶아서는 껍질을 벗겨 먹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숨이 붙어서 일까지 하는 게 귀신같다고 했다.

그해는 눈 많은 겨울이었다. 어느 날인가 눈보라가 창문을 두들겨대는데 문이 열리며 웅크린 왕극성이 들어왔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 귀신같은 왕극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그래? 왕극성이 목소리를 목구멍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정통편(아이스피린)을 주시우. 정통편은 왜? 왕극성이 상통을 일그러뜨렸다. 감기에, 머리가 아푸우. 방에 있던 아버지가 문 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방에 들어오라구 하구려. 그러고는 농촌으로 올 때 신주 모시듯 싸고 동이고 해서 가져온 책장서랍에서 정통편 몇 알을 꺼내서는 왕극성에게 쥐여 주었다. 어머니가 따뜻한 물 컵을 건네자 왕극성은 몇 알인지 헤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입에 넣고 삼켜버렸다. 형이 투덜거렸다. 저 바보가 저걸 단번에 먹으면 속이 쓰려 사나? 아버지가 형을 흘기며 어험 했다. 바보라도 그럼 쓰냐? 사람이 사람을 깔보면 자기를 깔보는 거야. 바보라도 사람이잖냐. 형이 주눅이 들어 보고 있던 신문을 동북의 중국식 3간방 구들 가에 내려놓으며 왕극성을 흘겼다. 너 때문에 괜히 내가 재수 없잖아. 우리가 조선말을 했기에 왕극성은 희구하다는 눈으로 우리들을 멍청히 바라보다가 형이 신문을 구들 가에 놓자 신문에 눈길을 박고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이 그러는 왕극성이 이상한 듯 말했다. 이봐, 커지부리, 글자를 알아? 신문을 보는 꼬라지가 글 아는 사람이잖아. 왕극성이 흰자위가 많은 눈을 희번덕했다. 글자를? 글자를? 내가? 그러고는 간다는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형이 웃었다. 바보 같은 게, 글자를 아는 것처럼 쳐다보네. 그 말에 어머니가 화를 냈다. 너 그게 뭐니? 그게 사람 짓이가?!

음력설을 쇠고나서 공사에서 계급투쟁뚜껑열기(揭阶级斗争盖子) 공작대가 마을에 왔다. 공작대라는 사람을 보니 어느 대학의 선생이 조장을 맡고 학생 두 명을 데리고 온 것이였다. 세명 모두가 조선족이었으나 학생중 한명은 흑룡강의 벌리라는 곳이어서 고향인 경상도말을 쓰는 총각이고 한명은 연변이 고향인 사람이여서 느닷없이 아이꾸마, 저래쓰꾸마를 내뱉는 총각이었다. 선생은 김씨었는데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도 자그마해서 오뚝이 같았다. 그래 형은 뒤에서 오뚝이선생이라고 했고 어쩌다 형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보고도 아버지는 훈계하지 않고 시무룩이 웃을 뿐이었다. 그들은 계급투쟁의 뚜껑을 연다고 오긴 하였으나 이 시골에선 오히려 불편하고 시끄러운 존재였다. 그들이 읽는 신문을 시골사람들이 흥취를 가질 수 없었고 그들이 하는 정치선전은 하늘을 믿고 사는 평범한 농민들에게는 귀신놀이 같은 하늘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부담스러운 것은 그들에게 밥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매일 한집씩 다니며 밥을 먹었다. 그것을 배정식이라 하였는데 중국말로는 배반(派饭)이라고 불렀다. 매일 강대장이 배정이 된 집을 찾아가 내일 공작대 밥하는 날이우. 하고 소리를 쳤고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알았어유 했지만 잔식구가 많고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끙 한마디 대답하고는 강대장의 뒤에 대고 삐죽거렸다. 왕바(자라의 속어)배때기에 쑤셔 넣을 것들! 중국 사람들은 자라하고 무슨 원수라도 졌는지 욕 속에 자라를 많이 곁들었다. 무슨 자라배때기, 자라하고 할 놈, 자라 할배 같은 놈 등등이었다.

물론 이런 배정 식에는 홀아비들은 빠지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슨 신이 들렸는지 바보 왕극성이 강대장을 찾아가 자기도 공작대의 식사를 하면 안 되는가 물었다. 강대장은 야, 바보 얼간아, 똥물에 얼굴 비춰 보고나 말해라. 너가 한 밥은 개도 안 먹어. 네 아비 8대 조상에 좆 물릴 새끼. 남은 머리가 터지는데 너 눔 멍청이까지 와서 애먹일 작정이나? 너 눔하구 맞서면 너 죽은 조상두 일어나 곡을 하겠다. 하고 욕설을 퍼부어 보냈다. 물론 이것은 강대장이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하고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웃어댔기에 알게 된 것이였다. 아무튼 왕극성이 지식인들로 구성된 공작대의 밥을 해주고 싶었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때는 바보니까 그랬거니 했으나 그 돌아버릴 만한 비밀을 알기에는 40여년이 지나서였다.

공작대는 조선족들이였고 시골밥상에 좋은 음식이 오른다고 해보아야 달걀볶음이면 최고의 대접이었다. 그래도 입맛에 맞으면 좋으련만 조선족들인 그들이 중국식 음식에 질리는 건 상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장국이나 김치를 찾았고 아버지와 함께 가볍게 옥수수 술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는 우리 집이 있기에 이곳에 있을 만 하다고 감지덕지 했다.

이렇게 지루한 겨울이 한숨짓고 어슬렁 봄이 들이닥쳐 웃기 시작했다. 농사꾼들에게는 일 년의 관건은 봄에 있다 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봄의 파종이 년 중의 첫 기본 행사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긴 파종하지 않은 밭에서 수확을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 파종의 시작은 밭갈이이고 밭갈이는 곧바로 농사일의 첫 과제이기도 했다. 사원들은 말이나 소에 쟁기를 메워 밭으로 나갔고 밀을 심고 옥수를 파종하고 콩을 박고 조이 씨를 뿌렸다. 그런데 밭으로 나가는 데는 그때로는 아주 중요하고 중요한, 빼놓았다가는 목숨이 위태위태해질 수도 있는 행사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밭으로 나갈 때마다 모주석의 초상을 일 밭으로까지 가지고 가야 했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주석의 초상 앞에서 만수무강 삼창을 하고 임표라는 사람에게는 건강축원 삼창을 하는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 있었다. 그 3창을 하고나서야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주석의 초상을 안고 가는 데에는 누구나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는 씨를 뿌릴 쟁기를 손에 들어야 했고 하나는 누구라 없이 낫을 가지고 가야 했기에 손이 해방이 되지 않아 모주석초상에 불경할 수도 있었다. 호미는 씨앗을 심을 구멍을 파야니까 필수겠지만 낫은 필수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봄에 늦게 물이 오르는 싸리나무는 정심을 덥히는 땔감으로 아주 일품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쉼 시간이면 밭머리근처에 쌔구버린 싸리나무를 한단 해 메고 돌아와 점심밥을 덥혀먹고 돼지죽을 덥혀 돼지를 먹이고 오후 일 밭에 나가군 했다. 그러니까 낫은 살기 위한 필수였다. 그러다보니 모주석의 초상을 정중히 두 손으로 모셔야 하는데 어깨에 기다란 호미를 메고 손에는 낫을 들었으니 고역은 고역인 것도 있지만 돌아올 때 싸리나무 단을 메고 모주석초상을 모신다는 건 손오공의 변신술이 있으면 모를 가 천수 불처럼 손이 수천 개면 모를 가 불가능이라는 말이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다보니 이 일은 바보 왕극성에게 차례졌다. 처음부터 그한테 시킨 건 아니었지만 그한테 시키고 보니 수걱수걱 잘해냈다. 그러자 사원들은 점차 습관이 되였고 초상을 모시는 일은 아예 그의 몫으로 쳐버렸다. 이 바보야 초상을 모셔야 잖아? 멍청이 커지부리, 초상을 잘 모셔. 능지처참을 당하기 싫으면 높이 들어서 모셔야 해. 하고 사원들은 그를 놀려댔다. 그런데 일은 바로 모주석초상을 모시는 일에서 터졌다.

   
▲ 가족과 함께 한국 포항의 앞바다에서

그날도 왕극성은 예전처럼 모주석초상을 안고 앞에 서고 뒤에는 사원들이 줄레줄레 따라서 일 밭으로 나갔다. 밭머리에서 왕극성이 모주석의 초상을 안고 서고 사원들은 그 앞에서 수많은 관형어를 앞세운 위대하고 영명하고 정확하고... 하는 단어를 앞세운 다음 만세 3창을 하고 임표라는 사람도 건강하라고 3창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 옥수수씨를 박는 일이였다. 평온하고 한가롭기까지 해 보이는 날씨 좋고 화창한 오전이었다. 쉼 시간이 되자 사원들은 일정처럼 밭머리 산으로가 들어가 싸리나무를 베여 단을 만들어 밭머리에 가져다 놓았다. 그날 누구도 왕극성이 노끈으로 동인 허리춤 뒤에 낫을 차고 갔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이 없었고 그도 남들처럼 싸리나무 한단을 해서 밭머리에 놓았다는 것을 주의한 사람도 없었다. 일이 끝나자 사원들은 너도 나도 싸리나무 단을 어깨에 메였고 왕극성이 싸리나무 단을 어깨에 메고 모주석초상을 안으려고 끙끙거리는 것에 관심을 돌린 사람이 없었다.

이 삼 대에 씨 마를 새끼들아! 왜 나만 모주석초상을 들어야 하니? 나두 밥 먹고 똥 싸는 놈이다. 너들 손모가지는 썩은 나무꼬챙이니? 굴암퇘지가 낳은 놈 새끼들!...

갑자기 바락바락 악을 쓰는 왕극성의 소리에 사람들은 귀신에게 잡힌 상통이었다. 보니 왕극성은 모주석초상은 머리 우에 치켜들고 있었고 눈은 흰자위만 보일뿐이었다. 미친 고릴라가 따로 없었다. 너 이 고모 씹에 들어갈 새끼들, 충성한다고 만세 만세 할 때는 언제고 모시라니까 싫어? 나두 싫다, 싫단 말이다! 이 천둥 벼락에 맞아죽을 놈들아!...

순간, 바보 왕극성의 머리 우에 치켜들려있던 모주석초상이 밭머리에 동댕이쳐졌다. 유리파편이 날렸다.

찰나에 세상이 죽어버렸다. 바람마저 숨어버렸다.

돌같이 굳은 공기를 깨며 강대장이 달려와 왕극성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에미하고 할 놈아, 그게 뭐라고 감히 메쳐?! 머리가 돌았어? 뭔지 알기나 하고 메친 거야?! 오늘 너 놈 모가지 성한가 보자!...

그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어께에 메였던 싸리나무 단을 내려놓았다. 바보 멍청이가 한 짓이었지만 다리가 덜덜 떨리는 숨 막히는 자리였다. 한참이 지나 갑자기 교충이 메뚜기처럼 폴짝거리며 소리 질렀다. 반혁명! 반혁명! 반동! 반동!...

그 소리에 기다리기나 했다는 풍귀가 달려들어 눈알이 뒤집혀진 왕극성의 다리를 걷어찼다. 요 반혁명새끼 바보 커지부리야, 눈알에 돼지 똥이 씌웠니? 녀자 엉뎅이 볼 때는 언제고?! 멍청이 커지부리 같은게...

그러는 풍귀에게 강대장이 꽥 소리를 질렀다. 이 봐, 풍귀! 이 일이 무슨 네놈 돼지엉뎅이 여자하고 관계가 있다고 지랄이야! 저게 바본 거 몰라? 네 놈두 똑 같은 바보 얼간이야, 씨발!

강대장은 조심스레 모주석초상을 들었다. 유리조각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다행히 초상은 유리만 깨어졌을 뿐 찢어지지는 않았다. 이 바보야! 초상이 찢어졌더라면 너 놈 조상한테로 갈 번했다. 똥물에 튀할 놈, 네놈이 사람 잡을 번했잖아. 그러고는 줄레줄레 멍청해진 사람들에게 손을 저었다. 집에 가야지, 오후 일은 안 할거야?!

그때에야 바보 왕극성이 풀썩 땅에 주저앉으며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엄마야! 살려줘, 살려줘...

사람들은 그러는 왕극성을 뒤에 두고 밭에서 내려왔다. 아무리 바보 왕극성이 한 짓거리라도 현장에 있었다는 그 하나만으로 라도 사람들의 얼굴은 거멓게 죽어있었다.

며칠 동안 바보 왕극성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일하러 나오지 않았고 찾는 사람도 없었다. 바보니까 어디가 죽었으려니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죽어도 묻어주어야겠다는 사람이 있겠는지 의심이었다.

그 일이 있고난 이튿날 공작대로 내려온 김선생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방안에서 두 사람은 토초를 말아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선생이 심각한 얼굴하고 있었다. 바보가 한 짓이라도 걱정이군요. 이거 정신이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총살감이라도 될 일입니다. 공사에 회보를 할가요? 아버지도 심각한 상이였다. 한참이나 담배를 빨던 아버지가 한숨을 쉬였다. 글쎄요. 필경은 바보가 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회보를 했대야 결과가 없을 것 같은데 긁어서 부스럼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 자리에 없었지 않습니까? 이곳 사람들에게는 보지 못한 것은 없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은 완곡했으나 듣는 사람은 느낄 수 있었다.

시골의 일상은 세상이 어떻게 되였든 판에 박은 모습으로 흘러갔다. 그 일이 있은 후 수일이 지나 바보 왕극성은 일 밭으로 나갔고 사람들도 전처럼 그를 놀려대고 부리며 푸득거렸으나 그 일만은 꺼내지 않았다. 손오공이 금고봉으로 그은 선을 지키듯 말이었다. 이렇게 서서히 그 일은 시간이라는 마차를 타고 망각으로 달려가는 듯싶었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조이 두벌김을 맬 때였다. 마을에 해방표 트럭 한대가 들이닥쳤고 한양에서 제조한 99식 보총을 멘 민병들이 차 우에서 토끼처럼 뛰어내려 곧바로 왕극성의 집으로 달려가 한창 돼지죽에서 삶기고 있는 감자를 꺼내 먹고 있는 왕극성을 개처럼 끌고나왔다. 그러고는 《반혁명 왕극성》이라는 기다란 고깔모자를 뒤집어씌우고 트럭우로 끌어올리느라 낑낑거렸다. 왕극성이 개구리처럼 버둑거렸다. 그러자 왕극성의 목덜미를 잡고 끌던 민병이 씨발을 했다. 이 반혁명새끼가 죽을라고 환장을 했구나! 그리고는 총개머리로 왕극성의 어깨를 들이쳤다. 순간 왕극성은 풀대처럼 땅에 쓰러졌다. 다만 비명소리는 없었다. 그 민병이 쓰러진 왕극성을 잡아 일으키다가 갑자기 코를 잡으며 오만상을 찡그렸다. 이 반혁명새끼가 바지에 똥을 쌌잖아! 어- 구리다. 씨를 말릴 새끼!

   
▲ 한국 부산에서 한국의 추리소설가 김성종선생과 함께 (앞줄 중간 김성종, 오른쪽 진설홍, 뒤쪽 오른쪽 최국철, 왼쪽 강호원

어떻게 되였든 바보 왕극성은 트럭 우에 올려졌다. 풀풀거리면 떠나가는 트럭의 뒤를 조무래기들이 따라가며 큰 구경이라도 했다는 듯 깔깔거렸다. 바보 왕극성, 멍청이 왕극성, 커지부리 왕극성, 똥싸개 왕극성, 돼지새끼 왕극성...

조무래기들은 왕극성을 태운 트럭이 마을 동구 밖에서 사라질 때까지 웃고 떠들었다.

그날 저녁 공작조의 김선생이 우리 집에 왔다. 아버지의 얼굴이 죽어있었다. 김선생이 공사에 가서 그 일을 보고했습니까? 김선생의 얼굴도 많이 불안해보였다. 아무래도 큰일 같아서 보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멍청이라는 것두 잘 설명을 했는데 그 사람들이 계급투쟁의 좋은 전형이라고 하는 바람에...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쉬였다. 멍청이가 한 짓에 무슨 계급투쟁이 있겠습니까? 바보하고도 계급투쟁을 논하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김선생이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왕극성이 그렇게 붙들려간 후 마을의 일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해 뜨면 밭에 나가고 해 지면 돌아오고 저녁이면 무슨 학습이라고 모여서 졸거나 토초를 태우고 시간은 인적이 없는 시골의 개울물처럼 소문도 소리도 없이 흘러갔다.

누군가가 공사마을에 갔다가 왕극성이 반혁명분자들과 지주분자, 부농분자들과 함께 각 마을을 다니며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더라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원래 마을에 있거나 말거나 낟알속의 뉘 같은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여름의 뙤약볕이 바래지고 가을이 닥치고 가을걷이가 끝나자 탈곡이 시작되고 낟알들이 창고며 마을사람의 쌀독에 들어가자 동북지방 사람들이 묘동(猫冬)이라 부르는 겨울나이가 시작되었다. 짧은 겨울 해를 따라 하루 두 끼를 먹었고 초저녁이면 이불 밑에 기어들어 코를 골았다. 겨울이 유별나게 긴 북방에서는 겨울은 허리가 느긋하게 늘어나는 계절이었다.

그날은 게으른 겨울 새벽이 퍼렇게 우는 아침이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시골사람들은 종래로 문을 두드리는 법을 몰랐다. 문 앞에 와서 누구 있소 하고 소리 지르면 주인이 대답하면 들어가고 대답이 없으면 돌아서는 식이였다. 그런데 그 문 두리는 소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고집스러웠다. 어머니가 솜옷을 걸치고 나가더니 어머! 하고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산짐승들이 자주 집안에 들어오는 일이 있었기에 나와 형은 고양이처럼 뛰어 일어났다. 부엌에 웅숭그리고 서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남포등의 등심을 높이고 보니 바보 왕극성이 덜덜 떨며 서있었다. 어머니가 한탄했다. 아이구, 저게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구나. 극성은 극성이다. 사람목숨이 질기긴 하구나.

그 통에 온 식구들이 다 일어났다. 아버지도 부엌으로 나왔다. 추운데 집안에 들어오라고 해라. 그리고는 왕극성을 재촉했다. 이봐 극성이, 어서 방에 들어와.

왕극성은 비실비실 방에 들어와서도 구들 가에 선채로 앉을 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형이 투덜거렸다. 저게 왜 우리 집으로 찾아온 거야? 아버지가 무섭게 눈을 흘겼다. 그게 사람이라고 찾아온 거 아니냐! 사람 그렇게 대하면 못써!

형은 주눅이 들어 움츠려들면서도 왕극성을 흘겼다. 어머니가 들어섰다. 추워? 왜 왔어? 어서 앉어. 구들이 따시니까 구들 우에 올라가. 왕극성은 덜덜 떨면서도 구들 우에 올라갈 념을 못하고 구들 가에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어머니가 물었다. 왜 왔어? 왕극성은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은 채 흰자위가 많은 눈을 희뜩 했다. 배 고파유. 바람소리가 심하게 났다. 보니 앞니가 다 빠지고 없었다. 저게 얻어맞기는 많이 맞은 모양이구나. 후유, 사람이 어찌...

어머니는 부엌으로 나가 전날 저녁에 먹다 남은 옥수수 죽을 퍼가지고 들어와 바닥에 놓인 밥상 우에 올려놓았다. 아직 온기가 있으니 먹어. 왕극성의 눈에서 번개가 번뜩 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죽사발을 들더니 그대로 후루룩 후루룩 마셔댔다. 어머니가 혀를 찼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면 큰일 나. 저게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극성이다 극성. 왕극성은 죽 두 사발을 먹어버렸다. 어머니가 더 떠주겠다고 하니 머리를 저었다. 온 얼굴에 상처투성이였고 언제 흘린 피인 지 마른채로 붙어 때인지 피인 지 가릴 수가 없었다. 죽 두 사발을 먹고도 왕극성은 그냥 후들후들 떨었다. 아버지가 안쓰러운지 어머니에게 말했다. 작년에 내가 입던 그 솜 내복을 저 사람에게 입히우. 어머니는 한참을 부시럭거려서 궤 밑에 깔려있던 해진 솜 내복을 꺼내 왕극성에게 주었다. 왕극성은 싫다는 소리 없이 내복을 받아 가슴에 안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추운데 여기서 입고 가. 그래도 왕극성은 입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가 다가가 왕극성의 품에 솜 내복을 당기며 형과 나에게 말했다. 저게 별거 다 부끄러워하는구나. 너들 억지라도 입혀라.

형과 내가 달려들어 그의 솜옷을 벗기려하자 왕극성은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했다. 이 바보야, 이걸 입으면 따뜻하거든. 그래도 왕극성은 완강했다. 안되겠다 싶어 우리 형제는 억지로 그의 솜옷을 벗겼다. 솜옷 한 벌만 입었기에 솜옷을 벗겨내자 알몸이 드러났다. 순간 우리는 목석이 되어버렸다.

왕극성의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솜옷 안은 마른 피가 살과 문질러져 윤기까지 났다. 무엇에 얻어맞았는지 어떤 상처는 이미 아물었고 어떤 상처는 아물고 있고 어떤 상처는 피가 말라붙어있었다. 사람이 제일 지독한 짐승이라니까. 어머니의 탄식이었다.

왕극성에게 솜 내복을 입히자 왕극성은 자기 절로 솜옷을 입고 앞섶을 포개고는 노끈으로 허리를 동였다. 아버지가 한숨을 지었다. 추운데 가지 말고 여기서 몸을 녹이고 가. 우리가 먹을 때 아침도 좀 더 먹고. 그러나 왕극성은 머리만 저었다. 저 눔이 벙어리가 되였나?...

왕극성이 구들 가에서 일어나더니 아버지 앞으로 다갔다. 무슨 일인가고 놀라는데 왕극성이 털썩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절을 했다. 머리를 드는 순간에 스치는 눈길에 평생을 가도 잊을 수 없도록 숭엄하기까지 한 감격이 배어있었다.

정확하게 아홉 번이었다. 왕극성은 정확히 아홉 번 절을 하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말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뒷모습을 보니 발걸음에 힘이 있었고 허리도 많이 펴져있었다.

그 후로부터 왕극성은 말이 없어졌다. 마을 젊은이들이 놀리고 시까슬어도 전처럼 대꾸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바보 멍청이가 조리돌림을 당하더니 팔부가 사부가 되였다고 웃었다. 얻어맞아 앞니가 다 빠져 바람이 새더니 돼지 똥이라도 들어찼던 머리마저 비어버렸다고 키득거렸다. 참으로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간다는 소리도 온다는 소리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일 밭에 나가서는 언제나 남의 뒤에 떨어져있었다. 다행히 바보라고 일을 하라고 닦달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왕극성은 우리 집에 몇 번인가 더 온 적이 있었다. 그건 정통편 둬 알을 얻으려고 온 것뿐이었다. 와서도 정통편 주시우 하고는 이상의 말이 없었다.

우리는 황둥개골에서 만 5년을 살았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새로운 일터로 배정이 되였다는 소식이 왔다. 뭐 어느 시골탄광이라고 했다. 평생 중학교 교과서나 편집하던 아버지가 왜 탄광에 배치되어야 하는가는 귀신도 모를 일이였다. 아무튼 시골보다는 조건이 좋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이사준비를 하느라고 며칠간 부산을 떨었다. 동네사람들이 와 도와주고 이삿짐이라야 시골에 쌔구버린 나무가 두어 트럭이고 살림하는 짐은 반 트럭도 안 되어 반나절에 이삿짐을 다 쌌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래도 5년을 정들었던 곳이라 떠나려니 아련한 마음에 숨이 막혔다. 강대장이 떠나는 우리에게 마지막 아침을 차려주어 우리는 강대장의 집에서 옥수수 술에 전병을 뜯으며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술이 몇 순배 돌고 인사말도 거의 끝나가는 데 왕극성이 들어섰다. 하방간부 있수?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를 하방간부라고 불렀고 우리는 하방간부가족이라고 불렀다. 보니 왕극성의 손에는 긴 밧줄이 쥐여져있고 뒤에는 목을 맨 얼마즈가 따르고 있었다. 강대장이 펄쩍 했다. 사람을 찾으면서 왜 개는 끌고 다녀? 씨발, 정신이 있는 거야? 우리는 그만 웃고 말았다. 원래 바보인데 바보 보고 정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그게 더 정신이 없는 소리가 아닌가?

우리가 웃는데 왕극성이 끌고 온 개를 가리켰다. 조선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는다는데 가져다 잡아 먹수-우. 앞니가 없어 바람이 새는 소리로 하는 말에서 우리는 왕극성이 자기의 개 얼마즈를 우리에게 주어 잡아먹으라고 한다는 뜻을 가려냈다. 아버지가 손사래를 저었다. 개도 주인을 따르는 놈인데 안 돼. 가져가라 구. 강대장이 왕극성을 나가라고 손을 저었다. 까짓 개 한마리로 인사냐? 이 바보 커지부리 멍청이 같으니라구. 어서 나가!

그래도 왕극성은 버티고 선채로 구원을 바라듯 바라보았다. 가져다 잡아 드시우. 나는 아무것 두 없수. 아버지는 고민하는 듯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럼 거 우리가 키우던 게사니(거위)를 주면 어떻소? 어머니도 부담스러웠던 모양이였다. 그러지요. 알도 잘 낳는데 주면 좋겠네요. 아버지가 왕극성에게 돌아앉았다. 그럼 우리 집에서 키우던 게사니 한쌍이 있는데 그거로 바꾸는 것으로 하자. 그러지?

왕극성이 바람이 실실 새는 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안 되우-

아버지는 개는 트럭에 싣고 광주리에 담겨 실렸던 거위 한 쌍은 왕극성네 집에 가져가라고 나와 형에게 명을 내렸다. 왕극성의 집에 가 거위를 풀어놓으며 형이 투덜거렸다. 따지면 우리가 밑졌어.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온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 가족은 5년이란 시간을 지낸 대황구라는, 형이 큰 황둥개마을이라 이름을 지어준 시골을 떠났다. 그 사람들 속에는 바보 멍청이 커지부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왕극성도 있었다.

아버지가 재배치를 받은 탄광마을은 탄갱이 세 개고 년 생산량이 삼십만 톤도 되지 않는 영세한 탄광마을이었다. 수천 명 인구에 골짜기를 따라 광산 사무실이며 광부들의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있었다. 우리가 배정을 받은 집은 누가 살던 집인지 모를 중국식 초가였다. 다만 골짜기의 지형에 따라 지은 집이다보니 남향집이 아니고 동향집이었다. 작은 정원도 있고 돌담장을 두른 채소밭도 있어 살기에는 불편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정원 정취가 있어 좋았다. 우리는 집 살림을 집안에 들여놓고 얼마즈는 마당의 말뚝에 매놓았다. 형은 말하고 연관된 얼마즈라는 이름이 개하고는 너무 팔천리고 바보가 지은 이름이 꺼림칙하다고 그때로는 아주 멋지다고 생각되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소위《바람이》였다. 바람처럼 빠르고 멋지라는 뜻이었지만 얼마즈는 이름이 숫 말이지 늙은 탓인지 빠르지 못했고 어딘가 뒤뚱거리는 데가 있었다. 형이 에익 했다. 아무튼 잡아먹을 놈이니까 이름이 진시황이라도 관계 없지.

그런데 이 바람이라는 새 이름을 가진 얼마즈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우리 집 마당에 개가 있는 것을 보고 탄광의 광부들이 개를 사겠다고 우리 집에 들이닥친 것이었다. 원래 시골에서 자란 개라 덩치가 컸고 그런대로 살도 쪄 그들은 저그만치 15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 15원이면 만만치 않은 돈이었다. 사실 동북의 만족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았고 한족들도 그 습관을 따라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시골에서는 조선족들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것을 알고 개를 가져다주고는 가죽만 벗겨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곳 탄광은 다른 모양이었다. 탄광이여서 월급이 많은 것도 있고 조선족도 적지 않아 한족들도 조선족을 따라 개고기를 먹었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어머니가 딱 잡아뗐다. 설에 사위들이 오면 잡아 먹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보니 얼마즈가 사라지고 없었다. 목을 맸던 밧줄이 남은 것을 보니 개가 씹어서 끊은 것이었다. 형과 내가 온 동네가 망하라고 욕설을 해대며 찾아 헤맸지만 이름만 숫 말에 종마이기까지 한 얼마즈는 종적이 없었다. 어느 개새끼 잡아 먹어겠지. 입이 헐어서 썩어질 것들!

그런데 그 얼마즈, 즉 바람이가 수개월 후에 다시 우리 집 마당에 매여졌다.

수개월이 지난 후 호적을 올리는데 문제가 있어서 형이 대황구가 소속된 공사로 갔다가 엎딘바 절이라고 갔던 걸음에 형이 이름을 지은 그 황둥개 마을에 갔다. 사춘기의 5년을 보낸 곳이니 정이 들 만도 한 곳이었다. 그런데 마을에서 왕극성의 얼마즈를 찾아낸 것이었다! 사실 찾은 것이 아니고 왕극성이 형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개목에 쇠고리를 걸고 다시 붙들어 온 것이었다. 그때 얼마즈는 우리 집에서 도망쳐 주인을 찾아 대황구로 돌아온 것이었다! 수백 리 되는 길을 어떻게 혼자서 돌아갔는지? 길에서는 무얼 먹었는지? 얼마즈를 내놓고 그걸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 머나먼 길을 바보 멍청이 왕극성도 주인이라고 찾아간 바람이가 한없이 기가 막혔다.

   
▲ 한국의 저명한 소설가 리호철선생과 연길공항에서

형은 얼마즈를 끌고 왔을 뿐 아니라 거위 알 십여 개도 가지고 왔다. 그 멍청이가 우리가 준 게사니가 난 알이라고 기어이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왔어. 바보라도 정은 있어가지고 어이구. 저 바람이하고 게사니알을 마구잡이로 맡기는데 죽을 고생을 했잖아. 개를 데리고 버스를 타지 못해 목재를 나르는 운전수한테 부탁해서 겨우 왔다니까. 길에서 객사할 번했어.

바람이는 우리 집에 돌아온 후 많이 온순해졌다. 하긴 수백리길을 주인이라고 찾아간 그 행동에 우리 식구들도 감동을 해 많이 살갑게 굴어준 덕이기도 했고 처음에는 우리의 조선어를 알아듣지 못하더니 서서히 알아듣기 시작했다. 그해 설에 넷이나 되는 누님들이 설을 쇤다고 온 가족 모두가 출동해 왔고 큰매부가 선동이 되여 바람이를 잡아먹자고 어머니를 꼬셨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 아버지가 단마디로 잘랐다. 그게 어떤 갠데 잡아먹어? 주인을 아는 영물인데 잡아먹었다가 무슨 죄를 짓자고 그러는 건가?!

그렇게 되여 얼마즈는 우리 집에서 바람이로 불리며 대접을 받았다. 바람이도 우리 집에 정이 들어 형과 나를 따라 탄광마을의 상점에도 가고 산에 버섯이나 개암을 따러 갈 때면 앞장에 서기도 하고 충실하게 집을 지키기도 했다. 이렇게 바람이는 우리 식구들과 떨어질 수 없는 한 가족이 되였다.

아마 우리가 탄광에서 산지 두어 해가 되는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 무더운 여름의 혹서가 한창 시들고 있는 저녁편인데 바람이가 끙끙거리며 목에 맨 밧줄을 물어뜯고 있었다. 탄광의 광부로 취직을 한 형이 퇴근하여 돌아오더니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불렀다. 저 바람이가 이상하다. 너 저놈이 왜 저러는지 모르니?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가 밧줄을 물어뜯다가 내게로 다가오더니 옷 섭을 잡아 물었다. 눈길에 애원의 빛이 가득했다. 왜 갑자기 이래? 어디 아픈가? 형이 머리를 저었다.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하는 짓이 이상해. 일단 저 목줄을 풀어주어라.

내가 바람이의 목에 걸린 가죽 띠를 풀어주자 바람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니? 저게 어딜 도망가는 거야?!

형과 나는 바람이를 쫓아갔다. 바람이는 곧바로 마을 뒷산으로 뛰어갔고 형과 나는 아직은 식지 않은 여름 바람을 잡아 삼키며 그 뒤를 따라갔다. 산등성이에 올라서자 바람이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먼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따라가자 바람이는 우리의 주위를 맴돌며 낑낑 신음소리를 내뿜었다. 이놈이 왜 이러지?! 왜 그래? 바람이야! 너 돌았어? 왜 이러는 거야?!...

썩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날 왕극성은 집에 불이나 타죽었다고 했다. 어떻게 난 불인지 알 수 없지만 불이 나서 가보니 왕극성이 살던 집은 폴싹 물러앉아있더라고 했다. 시간을 따져보니 얼마즈 바람이가 이상한 행동을 한 그날 그 순간이었다. 그 일을 아는 순간 우리 식구들은 오랫동안 침묵에 빠져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바람이는 잘 먹지도 않고 낯선 사람이 와도 짓지를 않았다. 목줄을 풀어주어도 굴 앞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날마다 여위여가는 바람이를 보며 어머니는 한숨을 지었고 나와 형은 사처로 다니며 소뼈며 돼지 뼈를 얻어다 고아 먹여보았으나 바람이의 식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였다. 저놈이 이젠 늙었나보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바람이의 굴 앞에 쭈크리고 있었다. 보니 손에 탄부들에게 간식으로 주는 식빵이 들려있었다. 이놈아, 먹어라 먹어. 사람도 못 먹는 빵이다. 먹어야 살지? 아버지는 바람이를 달래고 있었다. 아버지가 바람이에게 먹으라고 뜯어주는 식빵은 그때로는 상점에서는 볼수 조차 없는 고급 식빵이었다. 그때는 천방야담 같은 우유에 달걀을 넣어 만든 식빵이여서 국가에서 특별배급으로 탄갱에 들어가는 광부들에게만 배급하는 간식이었다. 그런 빵을 아버지가 바람이에게 주고 있는 것이었다.

바람이는 그렇게 몇 달을 더 살았다. 그날 아침에 나가보니 바람이는 턱을 굴 앞에 고이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가가 흔들어보니 숨이 없었다. 바람이가 죽었다는 소리에 아버지가 나왔다. 어, 그놈이 사람보다 나았는데...

그리고 우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우리 형제는 죽은 바람이를 이불에 싸서 탄광마을 뒷산의 양지바른 언덕에 묻고 크지 않은 무덤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그 후로부터 십년이 지나고 또 이십년이 지나고 다시 십여 년이 흘러갔다. 그사이 아버지는 정책 개정을 받고 탄광마을에서 도시로 들어왔고 개혁개방 30십년에 중국도 거대한 발전을 거듭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낙관적이고 관후했고 불평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백세를 맞이하게 되고 우리 형제는 아버지 백세생일잔치만은 크게 차리자고 별러서 전국에 흩어졌던 형제들이 오구구 우리 집에 모여들었다. 부모들은 형제중의 막내인 내가 모셨는데 막내네 집이 제일 편하다고 떠나려하지 않아 내가 모시고 있었다. 그날 생일잔치는 이 도시에서도 제일 호화롭다는 호텔에서 차렸다. 백세 생일잔치여서 길한 일이라고 청첩을 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모여들어 우리는 한바탕 행복한 고역을 치루기도 했다. 그날 저녁 형제자매들과 당신들의 손자, 손녀, 증손자에 증증 손자에 외증증 손자, 손녀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에워싸고 웃고 떠들다보니 자연 옛날 고생하던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레 바보 멍청이 왕극성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였다. 그러자 아버지가 허옇게 서리 앉은 머리를 끄덕끄덕 했다. 사실 그 사람은 바보가 아니었어. 그때 내가 산동으로 외지조사를 나갔댔던 걸 기억하냐? 그 때 난 다른 사람을 조사하다가 현 서류국에서 왕극성의 해방 전 서류하고 수배령을 보았어. 사실 그 사람은 국민당의 하급 장교였어. 항일전쟁에두 참가했구. 지주의 아들이구. 말을 타고 찍은 사진을 보니 젊었을 때는 아주 미남이더라... 이름도 왕극성이 아니었어. 해방이 되여 도망치며 바꾼 이름이겠지. 참 별명이 극기복례드니 극기복례인가보다...

아버지, 그 엄청난 비밀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었단 말씀입니까?

그게 살아가는데 무슨 쓸데가 있냐?

이튿날 우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되였다. 아침식사를 하라고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니 아버지는 이미 숨이 없었다. 평온하고 안온한 얼굴을 한 채 잠자던 그 모습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백세생일을 쇠고 돌아갔으니 호상이라고 하여 우리 집 장례식에는 곡소리가 없었다. 어머니가 울려고 하는 누님들을 말렸다. 아버지가 덕을 닦아서 우리 식구들 편하게 다 잘사는 거야. 백세까지 사셨으면 천수를 다 누린 거다. 울어서 뭘 하냐?...

장례가 끝나자 형제들은 갑자기 할일이 없어진 느낌이었다. 막내인 나까 퇴직을 하였으니 다른 형제들은 뭐 바쁜 일도 없었다. 이러구러 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 이렇게 모였던 바에 대황구에 한번 가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옛날 같으면 그 먼 길을 어떻게 갈 거냐고 고민하겠지만 지금이야 자가용이 들들 굴러다니니 계획이 서자 후닥딱 출발이 되였다.

황둥개마을, 즉 대황구촌도 천지개벽을 이루고 있었다. 옛날 살던 초가들은 거의 다 벽돌집으로 변했고 살아가는 모습들도 가난의 흔적이 지워져있었다. 다만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가 알던 사람들 태반은 죽었거나 어디로 이사를 가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몇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특히 대황구에서 가장 오래 산 형과 나는 어린애처럼 흥분하고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는 우리 집에서 키우다 왕극성에게 준 한 쌍의 거위에 대한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왕극성이 집에 불이나 죽어서도 거위들은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다 거위가 알을 품어 새끼를 깠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거위가 알을 까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라 신기해한 것은 물론, 거위에게 요정이 붙었다고 슬그머니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어느 날 거위들은 새끼들을 데리고 사라졌는데 썩 후에 대황구에서 십여 리 떨어진 사전자라는 습지에서 보았다는 것이었다. 본 사람의 말로는 십여 마리의 무리가 되었더라는 것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사전자가 잘 보이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사전자는 대황구마을에서 십리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동서로 길게 뻗은 사전자는 넓이가 3, 4십리, 길이는 백여 리가 되는 거대한 습지였다. 여름이면 짐승들도 들어가기 저어하는 습지여서 죽는다는 뜻의 사자와 습지라는 전자가 붙어 지어진 이름이었다. 사전자를 꿰지르고 지나며 고모집강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고가하(姑家河)가 흐르고 있었다. 사전자의 평야를 타고 싱싱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그 거위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도 살아 있을가?

큰누님이 말했다. 게사니는 오래 사는 동물이야. 수명이 오십년은 된다고 하더라.

형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 습지에는 승냥이도 있고 여우도 있을 건데...

누가 봤다지 않수? 나의 말이었다. 아니, 믿고 있었다. 

2015. 6. 1 새벽 초고, 5일 수개.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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