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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성, 이곳의 역사는 짧아 겨우 이천 년밖에 되지 않았다

기사승인 2019.04.12  17: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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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졘(马剑)

메두사에 상처받은 마음 형제애로 치유

카이로처럼 숨막히는 먼지가 날리지도 않았고 아스완처럼 더위를 피할 곳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며 더 중요한 건 무리를 지어 다니는 관광객들을 만날 수 없었던 점이다. 이집트라는 이 신기한 옛 땅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성은 존재감이 부족한 일반 젊은이의 모습과도 같았다.

이집트의 제2의 도시이자 중요한 항구로서 이 도시는 그다지 야심이 없어 보였고, 시가지에는 어수선한 유럽식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고 분주한 행색의 행인들이 오가는 보통의 활기찬 도시처럼 보였다. 이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역사의 부담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곳의 역사는 2천년 이상 밖에 되지 않은 짧은 역사이기 때문에 이는 이집트에서 언급될 필요도 없을 만큼 작은 부분이었다.

알렉산드리아 성은 기원전 332년에 시작해 331년에 세워졌다.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더 대제는 이집트를 정복한 후 그리스와 이집트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지중해변의 이름 없는 작은 도시들을 ‘알렉산드리아 성’으로 명명할 것을 명령했다.

이 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있었다. 배의 항해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당시 이집트 왕 톨레미 2세는 항구 입구에 항법등대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이 400피트 높이의 등대는 40년에 걸쳐 만들어졌고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다. 이어 두 차례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돼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여러 해가 지난 후, 후세 사람들은 등대가 남긴 석재로 그 유적지에 개트베 성을 만들었다.

성은 인공으로 만든 긴 둑에 의해 해안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성 전체의 면적은 크지 않고 그 안에는 수많은 작은 집과 지하실들이 있어 마치 큰 미로와 같아 등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에는 등대와 함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도 있다. 현지의 주요 교통수단은 궤도 전차를 제외하면 거리 곳곳을 달리는 중소형의 버스들이다. 현지인은 아랍어를 할 수 있고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며 몇 번이나 길을 물어보니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아는 중년 아저씨가 먼저 다가와 물어주었다. 그는 내게 갈 곳을 물어본 후, 옆 거리로 데려가서 중형 버스 한 대를 막고 나를 이끌고 차에 올라타고 차표를 사주었다. 내가 그에게 돈을 돌려주려고 하자 그는 한 손으로 밀면서 당연히 본인이 지불해야 하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에 도착하자 그는 함께 차에서 내려 웃으며 포옹을 한 뒤 다시 차를 타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현대적이면서도 외관상 경사진 원주체에 유리 커튼월이 비스듬히 박혀 있다. 본관 외벽에는 세계 각지의 가장 오래된 수십 가지의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커다란 한자로 된 ‘류(类)’가 눈에 띈다.

도서관은 기원전 297년의 톨레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전세계의 도서를 수집할 뜻을 가지고 이 도서관을 지으라고 명령했다. 이후 그의 뒤를 이은 파라오는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세계 각지의 고서적 원고를 계속 수집했다. 50만 권 이상의 명가들이 작성한 수기로 작성한 원고가 이곳에 소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훼손되는 역사의 운명을 면치는 못했다. 그렇게 1995년이 되어서야 새로운 도서관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도서관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고 대부분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도서관에는 견학할 수 있는 소형 박물관도 몇 개 있다. 한 스태프는 내가 중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지금 도서관에는 수십만 권의 도서가 있고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중국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 도서관의 건축적 특징을 유심히 살펴보라고 했다. 어느 모로 보나 외관은 저녁 해와도 같았다. 그녀는 건설자가 아마 알렉산더 도서관이 인간 지식의 등대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천여 년 동안 여러 차례의 대지진과 수많은 전쟁의 불길을 겪은 알렉산더 성은 대부분의 옛 건축이 오래 전에 백지화되었고 손에 잡힐 것만 같은 옛 자취는 시내 기차역 옆의 로마 원형 극장터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27미터의 폼페이 석주에만 흔적이 남았다. 카이로, 루크소, 아스완 등의 셀 수 없이 많은 지면 건축물과 육칠천 년의 역사가 깃든 곳들과 비교한다면 이곳은 관광객들에게 잊혀질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

이 도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온전하고 규모가 큰 로마시대의 옛 건축은 지하에 있다. 즉 현실판 ‘18층지옥’으로 불리는 1800여 년 전의 콤알수르카파 지하묘지였다. 하지만 관광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긴 수염이 나있는 관리인이 무덤 구덩이 입구에서 오후 차를 마시고 있다가 구경하러 오는 사람을 보고 습관적인 손길로 벽의 가격표를 가리키며 사진 촬영 불가를 알리면서 카메라를 맡겨야 한다고 했다.

무덤 입구는 비닐 천 몇 개로 받쳐져 있어 누추해 보였다. 나선형 돌계단이 묘혈(墓穴)로 통하는 깊은 곳을 선회하면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더 습하고 차가워진다. 무덤의 안과 밖은 빛의 차이가 심해서 사람의 눈은 2, 3분 정도 적응해야 무덤 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묘혈은 여러 개의 묘실로 이루어져 있고, 사방 벽에 조각상이 새겨져 있어 머리 모양이나 얼굴형, 의상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스타일을 나타내고 있는데, 벽화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명암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묘실로 통하는 두 개의 기둥인데, 기둥 위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녀 뱀인 요술 메두사가 있는데,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은 모두 돌로 변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한 마리의 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뱀은 바로 고대 이집트인들이 숭배했던 것이며 이것이 그녀로 하여금 이곳을 지키게 한 이유일 것이다.

수십 칸의 묘실이 차례로 늘어서 있고 좀 더 큰 묘실에 벌집처럼 석관이 놓여 있는데, 이 석관들은 파괴된 듯, 흩어져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산발적인 인골이 그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 묘실 벽에는 구식 백조등관이 달려 있어 매우 어둡고 때론 찌꺼기가 뒤엉켜 휘청거리는 등 원래 불안한 곳에 공포영화 분위기를 더했다.

전체 무덤 안에는 관광객이라곤 나 혼자 밖에 없었으며 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와 자신의 발자국 소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고요했다. 용기를 내어 끝까지 가려 했다가, 앞쪽으로 내려가는 다음 층으로 가는 묘로가 막혔다.

올라와보니 관리인은 200개 정도의 묘실이 있을 정도로 깊고 내려갈수록 공포감이 들게 된다면서 예전에는 많은 관광객이 올라와서 나쁜 심리반응을 보여 그 뒤로 대외에 개방을 하지 않게됐다고 한다.

묘지를 떠나서 오랫동안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 이 순간에 맛나는 한 끼 식사를 해야 메두사에 상처받은 그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안대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자 맛집으로 이집트에서 가장 맛있고 저렴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어둠이 깔리자 길거리의 식당들이 북적대기 시작했고 노점상들도 거리를 따라 모습을 보였다. 길거리 포장마차에는 오븐과 해물이 준비되어 있었고 양고기는 숯불 속에서 익어가며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인간의 연기와 화기가 느껴지면서 나는 묵묵히 자신에게 살아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하게 되었다.

카이로로 돌아가는 차표를 사러 기차역에 갔는데 일반 객차 표가 다 팔렸다는 말을 들었다. 이집트의 기차는 일반칸과 고급칸으로 나뉘어져 있고, 티켓 가격이 몇 배나 차이가 나는데 나는 매표원이 고급칸을 외국인에게 판매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종종 일부러 이렇게 말한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젊은이가 나와 매표원의 대화를 듣고 나를 한쪽으로 불러서 돈을 매표원에게 주라고 하며 자신이 내 표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는 나를 도와 표를 사주었다. 곧 그는 차표와 거스름돈을 가지고 돌아왔다. 떠날 때, 내가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에게 전화하도록 나에게 전화를 남겨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빠른 시간에 그는 표와 거스름돈을 들고 돌아와 헤어지기 전에 전화번호도 남겨주고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고 얘기했다. 아랍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제애라고들 한다. 그와 나를 안내해준 아저씨와 기타 사람들은 아마 모두 우리를 형제로 여겼을 것이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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