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한중작가포럼/문학작품특집58]석화의 시 '밥 한술에 절 한번' 외 11수

기사승인 2019.03.14  07:50:01

공유
default_news_ad1

[서울=동북아신문]석화시인은 연변의 대표 시인중의 한명이다. 그의 시는 화려한 색채를 배제하고 연변의 낱말들을 씨앗처럼 하나하나 골라 애써 아닌척 수수하게 엮고자 한다. 연변만의 아주 토속적인,  내적 정서를 끌어내고자 한다. 석화시를 읽으면 연변의 초가집 뜨락에 소복하게 내린 눈위에 찍힌 참새의 발자국을 보는 듯 시상이 선명하고, 봄녘 터전에 소복소복 지어진 이랑 위로 봄의 곡물이 그 땅의 주인을 닮은 얼굴들을 빠꼼히 내민 것을 보듯 친근하다. 석화시인은 연변 서민들의 댕글댕글 익은 낱말들을 골라 대화를 하듯 쉽게 풀어서 자기 시적 세계의 줄기찬 냇물을 만들어낼 줄 아는 시인인 것 같다....<편집자>    

   
▲ 석화 약력: 중국 용정 출생. 연변대학/ 한국 배대대학 졸업.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연길)문학아카데미 대표. 시집 "연변", 문학평론집 "윤동주대표시 감상과 해설", 번역서 "손자병법(전3권)" 등 30여 권의 저작 출간.

석화 시 12수

1. 밥 한술에 절 한번
2. 빈 들
3. 어떤 날
4. 한배를 타고 (渡江)
5. 기적소리와 바람
6. 천지꽃과 백두산
7. “연변표”아줌마
8. 연변은 간다
9. 도라지변주곡
10. 역전광장 한 귀퉁이에
11. 비 오는 날이면
12. 육촌형

  
1. 

밥 한술에 절 한번 
 

밥그릇 마주 앉아
숟가락 드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밥 한술 떠먹고
고개를 드니
오롯한 밥그릇에
겹쳐 보이는 것이 있다
고봉으로 퍼 담은
저 밥 한 그릇
아버지산소도 저 모양새니
가토하고 절 올리고
물끄러미 쳐다보던
지난 봄 청명 날이 떠오른다
그래 그렇구나
밥 한술에 절 한번
하루 목숨 챙기는 것
저 밥 한 그릇이거니
밥 한술 뜨기 전
고개 한번 숙인다
밥 한술에 절 한번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오늘도 고맙습니다.
 


2. 

빈 들 

 
드는 낫에 잘려
이삭들은 실려 가고
논밭에는
그루터기들만 남아
빈 들을 지킨다
벼가 쌀이 되고
쌀이 밥이 되어
식탁에 오를 때
빈 들에 남은 그루터기들은
실핏줄 같은 뿌리를 뻗어
땅속 깊은 곳에서 서로 엉킨다
한물간 바람이 저만치서
빈 들에 머물다 간다.
 


3. 

어떤 날 

 

기다리던 내 사랑처럼
눈이 오겠지
지난 봄, 여름 갈 곳 없이 떠돌던
아지랑이 같은 물안개 같은
내 꿈이 피어올라
수 만리 창공에서 얼음 얼었다가
육각의 모양으로
부셔져 내리겠지
어깨 같은 산발에
잔등 같은 들판에 그리고
굽이돌아간 핏줄기 같은 강줄기에
눈은 내려서 하얗게 덮이겠지
사람 사는 마을에도
마을 뒷산 묘지에도
눈은 내려서 하얗게 덮이겠지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온통
하얀 눈이 가득 차겠지
기다리는 내 사랑처럼
북쪽나라에 눈이 온다는 기별을
텔레비죤에서 기상캐스터가 전해주던
어떤 날.


   
▲ 세월과 함께, 시와 함께, 그리고 어느 날, 어느 곳의 정자에 앉아...<편집자>

4. 

한배를 타고 (渡江)

 

물위엔
제갈 공명 같은 안개가 낮고
안개 너머 대안에선
조 승상 같은 뱃고동소리 길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긴 강, 장강
이 강을 건너기 위해 우리는
관광버스 안에 허리 곧게 펴고 앉아있다
저기 한창 시공중인 대교가
반공 중에 신기루처럼 떠 있고2)
문뜩 나타나서 입을 벌린 뚜룬(渡輪)
십 여대의 관광버스를
차례차례 삼킨다
북방사람은 돌아가는 길
강남사람은 떠나가는 길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버스는 배를 타고
이제 모두 저쪽 기슭으로 건너가려고 한다
이게 무슨 인연일가
시간 전 만해도 동서남북 각지에서
그들은 저 각각의 방언으로 나는 또 조선말로
자기 삶을 사느라 떠들었거니
지금 모두 입 다물고 앉아있다
앞뒤 그리고 옆의 좌석에서 차례차례
적벽지전 나가는 삼국군사들 얼굴을 하고있다
안개는 사방에 짙게 깔리고
강물은 철석철석 뱃전을 두드리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5. 

기적소리와 바람 
 

 
기차도 여기 와서는
조선말로 붕 ―
한족말로 우(嗚)―
기적 울고
지나가는 바람도
한족바람은 퍼~엉(風) 불고
조선족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 바람 바람 분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을 나는 새 새끼들조차
중국노래 한국노래
다 같이 잘 부르고
납골당에 밤이 깊으면
조선족귀신 한족귀신들이
우리들이 못 알아듣는 말로
저들끼리만 가만가만 속삭인다

그리고 여기서는
유월의 거리에 넘쳐나는
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깔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



6. 

천지꽃과 백두산


 
이른 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이다

사래 긴 밭을 갈면 가끔씩
오랜 옛말이 기와조각에 묻어 나오고
룡드레우물가에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르다

할아버지는 마을 뒤 산에
낮은 언덕으로 누워 계시고
해살이 유리창에 반짝이는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가 한창이다

백두산 이마가 높고
두만강 천리를 흘러
내가 지금 자랑스러운
여기가 연변이다.



7. 

“연변표” 아줌마 
 

 
아줌마는 아주머니의 준말이다
아주머니는 아와 주머니의 합성어이다라는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언어학자 염광호박사와 물어보면 알겠지만
아줌마는 어쩔 수 없이 아줌마다
옛날에 앞뒤가 구별 안 되는 “몸뻬”바지와 코 신에 그리고
요즘엔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머리에 쓰고 있지만
대체로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비슷하게 평평한 입방체로
절반 하늘이 아닌 옹근 하늘을 든든히 받치고 서있는
아줌마는 어째든 아줌마다
해와 달이 뜨고
음과 양으로 나뉘는 이원적인 세상에서
“+”도 “-”도 아닌 존재로 인류 속에 나타나
수많은 과학자들의 머리카락을 새하얗게 한다는
아줌마는 역시 아줌마다

아줌마 아줌마 중에 “연변표” 아줌마는
이 세상 아줌마 중에서도 희귀품이라 한다.

   
▲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시인..."연변과 함께 간다"...<편집자>

8. 

연변은 간다 
 

연변이 연길에 있다는 사람도 있고
구로공단이나 수원 쪽에 있다는 사람도 있다
그건 모르는 사람들 말이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연변은 원래 쪽바가지에 담겨 황소 등짝에 실려 왔는데
문화혁명 때 주아바이랑 한번 덜컥 했다
후에 서시장바닥에서 달래랑 풋 배추처럼 파릇파릇 다시 살아났다가
장춘역전 앞 골목에서 무우짠지랑 같이 약간 소문났다
다음에는 북경이고 상해고 냉면발처럼 쫙쫙 뻗어나갔는데
전국적으로 대도시에 없는 곳이 없는 게 연변이었다
요즘은 배타고 비행기타고 한국 가서
식당이나 공사판에서 기별이 조금 들리지만
그야 소규모이고 동쪽으로 동경, 북쪽으로 하바롭쓰끼
그리고 사이판, 샌프란시스코에 파리 런던까지
이 지구상 어느 구석인들 연변이 없을소냐.
그런데 근래 아폴로인지 신주(神舟)인지 뜬다는 소문에
가짜 여권이든 위장결혼이든 가릴 것 없이
보따리 싸 안고 떠날 준비만 단단히 하고 있으니
이젠 달나라나 별나라에 가서 찾을 수밖에

연변이 연길인지 연길이 연변인지 헷갈리지만
연길공항 가는 택시요금이
10원에서 15원으로 올랐다는 말만은 확실하다.



9. 

도라지변주곡 
 

도라지 도라지 백도라지
심심산천에 백도라지
연길 네거리에 내려와서
칼라 도라지로 변신 하였대요
싸리나무 꼬챙이에 꿰인 채로
순진한 촌티 내며 서로 껴안고
동시장 서시장에 몰려있을 때가 첫 걸음이었고
수돗물에 알뜰히 가랑이 씻겨
“경희궁”, “경복궁”에 “서울한식관”
쟁반마다 하나 둘씩 담겨 나가는 것 둘째 걸음이래요
내친걸음 한 달음 확 달려가
된장, 고추장에 식초라 간장
맵고 짜고 시고 단 온갖 것들 뒤집어쓰더니
지지고 볶이고 무치고 데워져
세상의 구미에 맛들어져 가는 것이
넷째 다섯째 걸음이라나요
그 다음엔 해가 진 뒷골목
가로등도 희미한 모퉁이에까지 막 가버려
자정 넘은 노래방 빈 방에서는
가사 없는 우리민요 “도라지”노래가
반주곡 멜로디로만 울리고
우리말을 잘 못하는 한족사람들이
“또라지, 또라지” 이렇게 따라 부르더라고요.
도라진지 또라진지 모르겠지만
심심산천에는 백도라지요
연길 네거리엔 칼라 도라지, 또라진가 봐요.

10. 역전광장 한 귀퉁이에
—도시속의 시골사람들 1

역전광장 한귀퉁이에
허술한 세바퀴차 세워놓고
10원 혹은 15원을
그리운 형님, 동생이기나 한듯이 기다리는 사나이

지나가고 지나오는 열차마다
프랫홈에 사람의 사태를 쏟아놓지만
빨각빨각하는 지페는 머물지 않고 그냥 날아가버려
또 다시 텅 비여 더 넓어지는 광장-

아예 한잠 자보리라고 짐받이에 드러누워도
널판자는 밭머리처럼 부드럽지 않고
밀짚모자 끄당기어 얼굴 덮어도
풀벌레소리, 개구리울음소리 들리지 않아

두 눈은 동전잎마냥 동그랗게만 띄워지고
생각은 밀차바퀴처럼 빙글빙글 돌기만하여
이젠 어느쯤 되었을가
자꾸만 더듬어보는 논과 밭의 계절

-하얀 감자꽃은 다 떨어졌을가
옥수수개초리는 나왔겠지
지금쯤 논고의 물을 떼고 보면
아, 그 와글거리는 미꾸라지를…

다 잡을수 없는 그리움에
더듬어지지 않는 계절을 털고 일어나면
해는 어느 사이 높은 층집에 가리워지고
끔뻑끔뻑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고…

역전광장 한 귀퉁이에
허술한 세바퀴차 세워놓고
10원 혹은15원을
그리운 친구인듯이 그래도 기다려보는 사나이.



11. 

비 오는 날이면

—도시속의 시골사람들 2

 

비 오는 날이면
삽살개들만 좋아한 건 아니야
동네애들도 두셋씩
집집의 처마밑에 붙어서서
두 손에 빗물 받으며 깔깔거렸지

비 오는 날이면
밭일 쉬는 아버지
허리며 팔다리 쑤신다고 푸념하면서도
“좋은 비야”, “좋은 비야” 두 세번씩 외우면서
창 밖을 바라보며 잎담배 말으셨지

비 오는 날이면
가마목에 모여 앉은 언니네들이
뜨개감 손에 쥐고 쉼없이 도란도란거리고
숙제책 펼쳐 들고 모른 척 돌아앉아
그네들 이야기를 귀동냥하던 일 재미났었지

-지금도 비는 오는데
썰렁한 음식점엔 손님 한 분 없는데
목이 쉰 유행가수만이 록음기에서 흐느끼는데
엊그제 시골에서 올라온 복무원아가씨
창유리에 마주서서 무슨 그림인지 자꾸 그린다



12. 

육촌형

—도시속의 시골사람들 3

 

쓰딸린거리를 건너가다가
“어이-“ 부름소리에 뒤돌아 보니
길죽한 얼굴의 육촌형입니다
한 사람 건너 누구나 한다는
경리인지 “로반”인지된다고
소 팔고 집 팔아 시골 떠났다는 육촌형
어느 골목에서 뛰쳐나왔는지
내 뒤에 서 있습니다
“오래만이군”하며 내미는
때묻은 손의 손톱은 꺼멓습니다
그래도 언제나 붙임성 좋은 육촌형
어깨를 툭 치고 빙긋 웃으며
“한장 빌려줘, 좀…” 하길래
호주머니 다 털어 넘겨줬더니
제꺽 받아 쥐고 돌아섭니다
“다시 만나세”, “고마워” 이런 말들을
육촌형이 했는지 안 했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흘러가는
갖가지 색깔의 인파 속에서
껑충하고 휘우듬한 육촌형 잔등이
촌아이들 고무뽈처럼 둥둥 떠갑디다
그와 마주섰던 그 자리에는
이 도시의 자랑인 뾰죽한 탑이
길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구요.

 

 <주해>

시 '한배를 타고(渡江)' 해설

 
석화시인의 시에서 중국의 고전에서 인용한 전고들이 적지 않다. 당시(唐詩), 송사(宋詞)나 《삼국연의》 같은 중국 고전에서부터 모택동의 시사(詩詞)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아주 넓다. 이런 중국고전에서 따온 전고들은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시의 맛을 한결 돋구어주고 있다. 석화의 시 “연변ㆍ23 – 쌀은 내게로 와서 살이 되는데”에는 “봄, 여름, 가으내 철철의 신고가/ 알알이 맺혀서 반짝이는가”라는 시구가 있는데 이는 당나라 리신(李紳, 780-846)의 유명한 시 “농부를 가엾게 여겨”를 인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석화시인의 서정시 ”한 배를 타고“를 보면 한국 현대시와 중국고전의 영향을 아울러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시는 시적 발상이나 형식에 있어서는 백석의 시 “조당(澡塘)에서”를 연상시킨다. 하나는 공중욕탕에서 다른 민족과 만나고 다른 하나는 강을 건너는 배 위에서 다른 민족과 만난다. 하나는 도연명이나 양자와 같은 사람과 만났다고 생각하고 다른 하나는 적벽지전에 나가는 삼국의 군사들과 만났다고 생각한다. 또한 하나는 한가하고 게으르지만 “목숨이라든가 인생이라든가 하는 것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 그 오래고 깊은 마음들”을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조선족과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설파하고 있다.
 
그리고 “남국에 아서”의 마지막에는 “—제발 백팔가지 온갖 벌 다 주시더라도 / 뜬 달을 건지려 물속에 풍덩 하신/ 시 쓰던 그 양반만은 닮게 하지마소서, 아멘”에서 보다시피 밤중에 일엽편주를 타고 호수에서 소요하다가 수면에 비낀 달을 건지려다가 물속에 빠져죽었다는 시선 이태백의 일화를 아주 재치 있게 인용함으로써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요컨대 석화의 서정시 “한 배를 타고”는 백석의 “조당에서”의 시적 구조를 차용하고 중국의 《삼국연의》와 이태백의 일화 같은 고전을 전고로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시적 경지와 재미를 창출하고 있다고 하겠다.

-김정영ㆍ김호웅 <시인의 실험정신과 조선족공동체에 대한 시적 형상화>에서-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