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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작가포럼/문학작품특집56]김단의 시 '못' 외7수

기사승인 2019.03.09  13: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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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북아신문]  디테일한 스토리가 있는 시가 가슴에 더 와닫는다. 김단은 많은 시를 발표하지 않고, 또 조심스럽게 시를 내놓지만, 자기 스타일을 완연 고집하고자 한다. <편집자> 

   
▲ 김단 약력: 길림성 화룡시 출생. 2011년부터 현재까지 한국 경기도 화성시에 거주. 현대소재 회사원.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오상시낭송회 회원, 넝쿨문학회 회원. 시 발표 다수. 동포문학 시부문 신인상 수상.

  1.

김단

 

허물기 직전인
텅 빈 창고에서 당신은
고물상도 외면한
망치와 녹슨 못 한 줌을 들고 나오신다

당신의 허리처럼 휜 것이랑
ㄱ자로 꺾인 것들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엄마의 푸념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당신은 반듯한 돌멩이를 찾으시더니
부실한 못을 망치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의식을 치르듯이 경건히 두드린다
흐릿한 두 눈을 한껏 조프리고
요리 살살 조리 쾅꽝 
한눈 감고 지긋이 수평도 잡아본다
문드러진 창날까지 조심스레 세워주고
바라보는 눈 귀에 물기가 반짝인다

빛나는 새 못일 때를 생각하셨을까
당신은 못 중에도
제일 크고 단단한 왕못이었다
팔간집 반듯하게 잡고 지키느라
한눈 팔 사이
한숨 돌릴 사이 없이
발톱을 무섭게 박았으리
그리고 온몸으로 막아낸
태풍은 몇 급
폭설은 몇 자
폭우는 몇 미리메터
저 녹 부스러기들은 다 기억하고 있을까

왕못의 꺾인 등허리에 석양이 걸려있다.

 

2.

 


알림방송만 혼자 신이 난
지쳐가는 저녁 버스다
막차가 몇 심까
익숙한 고향 말씨에
졸고 있던 눈까풀이 반색한다
마중 나온 남자를 발견하더니
얼굴이 다 환해지는
작업복 차림의 중년 아저씨

친인일까
친구일까
고향 사람인 것만은 알 것 같은
호탕한 웃음소리를 날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멀어져가는 뒷모습
뼈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 두어 병
어쩐지 그것만으로
둬 시간 충분히 행복해할 것 같은 두 남자다
허풍도 허세도 살짝 부려볼 것이다
그래야 술맛이 날 테니까
고된 일에 녹은 몸이 술을 못 이기고 흔들리겠지
목소리 톤은 점점 높아갈 것이고
고동색 얼굴에는 붉은빛이 짙어갈 거다
그리고는 차 시간을 놓칠 수도 있고
내릴 역도 잊은 채
고향을 찾아 꿈길을 헤맬 수도 있다

눈꼬리를 치떠야 할 내가
놀랍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오늘 밤 막차는 조금 늦어졌으면 좋겠다

 

3.

이상한 장마당

   

장이 선 것은 그날부터다
어버이날 선물로 받은 옷을
박씨가 도저히 입을 수 없다고
노인회관에 들고나온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부풀어가는 몸을 따라주지 못하는
나의 코트에도 날개가 돋았다
뽕나무집 최씨가 걸치니
모두가 손뼉을 친다
집집의 옷장이 발칵 뒤집히었다
장사꾼들이 줄을 섰다
상표를 떼지 않은 새것도 보인다

시끌벅적 장보기가 시작되었다
옷 모델로 자처하는 멋쟁이
악의 없는 욕을 퍼붓는 욕쟁이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훈수쟁이
놀란 들고양이가 도망을 친다

보따리를 비웠을 뿐인데
내 몸이 다 가뿐하다

어제는 홍씨네 노 부부가
모든 것을 노인회관 장터에 내놓았다
그리고 맨몸으로 양로원으로 떠났다.

 

4.

홍게

 

익은 게인 줄 알았다

수족관 가득 붉은 게가 움직인다
헛것을 본 걸까
죽은 게가 손짓도 하고 웃고 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동해가 시치미를 떼고 있다

모르는 게
홍게

일행에게 웃음을 준 대가로
진짜로 익은 붉은 대게를 먹었다
이번엔 또 커서 대게가 아니라
대나무 닮아서 대게라 했다

모르는 게
대게

익은 게가 가위로 허공을 자르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 시를 쓰는 것도 좋지만 읊는 것도 좋다. 마음의 현에 시줄이 얹혀 너울거리니까...<편집자>

 

5.

래퍼의 모자

 

 

전철역과 연결된 구름다리 위
구름처럼 밀려오고 흩어지는
사람들 눈에는
바닥에 죽쳐 앉은 거지가 보이지 않았다
나처럼 외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독한 더위 때문에
어디든 들어가기에 바쁜 사람들
그 다급한 흐름이
외국 청년에 의해 끊기었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흑인 래퍼의 모자는
거지의 머리 위로 날아가 앉았다

젊은이는 불볕 속으로 사라지고
흐름은 흔적 하나 없이 어어졌다
유리 지붕도 막지 못했던 햇볕만이
래퍼의 모자 앞에서
갈 곳을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나만 불편한 것일까
동전 한 푼 주지 않으면서
불편하다는 것이 불편하여
쫓기듯 구름다리를 내려간다

 

6.

달력

 

다음 달 달력에
세 번째 동그라미를 그리다 말고
들고 있던 이번 달을 확 찢어버렸다
이틀이 허망하게 날아갔다

항상 그랬다
오늘은 놓아 버리기에 급했고
내일로는 자신을 속이기 바빴다
심심하여 달력을 쳐다보며
여기저기 바쁜 척 표시나 하고
불안하여 밑 장 빼보기를 했다

달력이 저 앞
꽃피는 동네를 지나갈 때까지도
겨울잠을 잘 때도 있었고
베짱이의 노래도 끝나지 않았는데
파종 준비를 할 때도 있었다

새날 새달 새해만 새 희망일까
내가 찢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개학 날까지 남은 삼일이
코흘리개 손녀의 손에서
훌훌 찢어져 나갔을 적에
밥풀로 고이 다시 모셔오던 할머니가
이 가을에야 새삼스럽다

찬바람이 떨어진다
속이 꽉 찬 열매들 사이에
시린 쭉정이
내가 안고 가야할
찢어버린 날들이 아프다

 

7.

전 

 

막 써레질을 끝마친 논들은
전을 부치기 좋은 반죽이 되어
큰 전(田)에 작은 전을 부치고 있었다

전이 궁금하여 다시 찾아갔을 때는
네모반듯한 거울 위에
간이 큰 물방아 둬 마리
쭝쭝 하늘을 헤 가르고 있었고
선비 가문 후생인 백로는
거울이 깨질까
외발로 하늘을 읽고 있는데

잘 부쳐진 전은
그 아래 낮게 엎드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넓은 가슴에는
또 다른 전이 익어 간다

 

8. 

두 남자

 
 
처음 매형을 만나던 날
숫기 없어 인사도 겨우 하던
막냇동생은 애였다
 
철부지 처남과 무뚝뚝한 매형은
그렇게 삼십 년을 바라보며
차지도 뜨겁지도 않더니
요즘 들어 부쩍 서로를 찾는 눈치다
 
안부 전화도 종종 하고
가끔 술도 한 잔씩 나눈단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을 두 사람
그 술자리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마른안주에 술잔 기울이던 오늘
호랑이 같던 어른도
사랑스럽기만 하던 어린애도
어느덧 어깨에 힘이 빠져
함께 빛을 잃어가는 모습에
나는 놀라 뛰쳐나오고 말았다
 
술상을 다시 봐주러
정육점으로 뛰어가는데
황급한 발걸음에 부서지는
가을 햇볕이
마른 눈확에 샘을 판다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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