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시는 자기 언어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그 언어에 자기의 숨결과  생각과, 색깔을 담아야 할 것이다. <홍연숙>    
▲ 홍연숙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시부문 우수상 수상. 현재 울산 거주
 1.  엄마는 거실매트를 뜨고 있대요  
 
엄마는 거실매트를 뜨고 있대요
거미처럼 웅크리고 앉아
새벽부터 한밤까지 뜨고 뜬데요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한땀한땀 뜨고 있대요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딸한테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는 엄마는
맨발로 쏘다니기 좋아하는 딸에게
거실매트 하나 떠준대요
이제 저는
이 방에서 저 방으로
화장실에서 주방으로
쪼르르 밟고 다니기도 하고
그 우에서 막걸리도 홀짝거리다가
퍼질고 티비를 보다가 낮잠도 자겠지요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어디 아픈 데는 없니
그런 걱정들을 꼭꼭 눌러 떠가는 거실매트는
엄마의 힘줄로
엄마의 날숨으로 뜨는 거실매트는 
제가 다 빨아먹고
거죽만 남은 엄마처럼 되겠지요
엄마는,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다는 엄마는
저의 살찐 엉덩이가 시릴까 봐
저의 젊은 발이 시릴까 봐
뜨개바늘보다 더 가늘어진
꼬챙이 같은 손가락으로
거실매트를 뜨고 있대요
엄마를,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엄마를 누벼가고 있대요
  
2019.1.18       2.  신경이 쓰이네  -발렌타인데이에 선물 드립니다   
문만 나서면 웃집 담 너머 고추가 보여
빨갛게 익은 것이 자꾸 눈길을 끌어
오래전부터 쭉 봐 왔지
그땐 검푸르게 독 오른 게 날로 먹어도 죽이게 맛날 것 같았어
입안이 얼얼하게
눈물 나게
오래오래 생각나게 말이야
그래도 어쩌겠어
남 물건에 함부로 손대면 안되잖아
지금 익다 못해 독이 빠져 희부여지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어
저 집은 고추를 안 먹나 봐
그대로 처박아 두는 것도 죄라고
먹어줘야 저놈의 고추도 지 인생 다 하는 거여
약간은 후줄근해져도 기름 두르고 살살 볶아대면
그런 데로 감칠맛이 날 텐데 말이야
손만 넣으면 잡을 수 있겠는데
가슴이 쿵쾅거려서 도저히 손 댈 수가 없네
나만 이러는게 아니야
다들 눈독 들이고 있잖아
저기 흘끔대며 지나는 꼴을 봐라
아주 그냥 침을 흘리는구만
그런데 어쩌나 선손을 써야는데
저 고추를 어찌할까
신경이 쓰이네    2019.2.14       3. 송엽국이 지나는 겨울    
어디에도 묻히지 못하고 있다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존재들이
이를 악물고 손에 손 잡고 이어져 있다
모래먼지 일어나는 뼈다귀들 사이에
무수히 뻗어 나온 손가락들이
허공을 외치고 있다
갈 곳 없는 소리들은 추락하고
다시 흙을 잡고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야위고 비틀어진 메마른 줄기 끝에
우묵하게 꺼져 들어간 할머니의 자궁과, 말라붙은 젖 갈수 없는 아프리카* 를 향하여
얼룩진 눈물자국이
겨울바람에 푸슬푸슬 씻겨 날린다
*아프리카-송엽국의 원산지
2019.1.24       4.  겨울비

 
이곳에는 몇 번째로 내렸을까
잠간 멈춘 버스안에서
겨울 첫 비를 본다
 
저렇게도 많았을까
차고 넘친 너의 가슴처럼
숨가쁘게 쏟아진다
 
버스는 달리는데
마음은 자꾸 뒤로 가고
차창에 매달린 슬픔이 온 몸을 비튼다
 
새가 떠난 흐린 가슴에
비는 소리 내어 통곡하고
저리는 그리움이 후줄근히 드러눕는다
 
 2019.1.17.       5.  매화는 침묵한 적이 없다     
따뜻한 남쪽에서 파랗게 세운 말들이 무성하다
바람 불면 감추지 못하고
알몸으로 부딪치다가
비에 젖어 곬 따라 간다
동천강으로
태화강으로
바다로 간다 매화는 침묵한 적 없다
찬 서리에
깨물었던 입술이 부르터지고
핏줄에 박힌 말들이 얼음 깨고 나온다 심장이 뛰지 않는다 하지마라
매화는
조 용 히 핀 다, 요 염 하 게   2019.2.6    
6.  지하철 아이  
어느 불편한 눈살에 떠밀려
의자의 맨 귀퉁이에 구겨졌다 번뜩이는 볼테안경은
스마트폰을 게걸스레 먹어대며 세상을 거부하고
얼굴을 삼킨 마스크 뒤로
풀쩍이는 파도에 쓸려 나온 죄들을
휴지가 달려들어 가둔다
풀어헤친 빗장사이로
끝끝내 새어 나와 겁먹이는
눈썹까지 녹아내린 짐승 공포에 질린 눈들이 피한다
투덕투덕 떨어지는
지하철바닥을 굼실대는 아픔들만
두렵게 본다
눈이 없어 따뜻한 눈길을 줄 수 없다고
가슴이 없어 감싸줄 수 없다고
손이 없어 잡아줄 수 없다고
비질비질 기어다니는 괴물들이 판친다 구석에 쪼그라져 작은 자리
더 작아지려는 가련한 짐승은 울 줄도 모른다
201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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