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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작가포럼/2019 작품 특집11]홍연숙 시 '우정동 시장통의 울언니' 외9수

기사승인 2019.01.17  14: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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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동북아신문]시로 보는 동포문인의 정감세계...

   
▲ 홍연숙 약력: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시, 수필 다수 발표. '문학의강'으로 시 등단. 동포문학 8호 시부문 우수상 수상. 현재 울산 거주

1. 우정동 시장통의 울언니
 
 
우정동 시장통의 약국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불쑥 나타난
분이언니 반찬가게
 
한국영감이 뭣이라고
젊은 나이에 시집와서
입만 열면 중국년이라 무시하는
영감탱이는 늙어서 놀고
데리고 온 아들놈은 어려서 놀고
친정 한번 못 가보고
주름만 접은 이십여년
 
언니의 태양 같던 얼굴이
쌍달 같던 가슴이
, 다리, 허리가
물엿처럼 녹아내려
김치, 깍뚜기, 콩자반
도라지 무침, 무 말랭이, 깻잎장아찌...
언니의 눈물처럼 짭쪼름하고
언니의 슬픔처럼 얼큰한게
~ 녹인 언니 맛이라며
맛있다고들 난리법석을 놓으며
천원 이천원으로
언니를 사먹은 우정동사람들
 
그렇게 이십 여년을
자름자름하게 썰려서 팔리던 언니
가슴을 열어 이것 저것 떼내고
녹쓴 무릎을 갈아버리고
비뚤어진 허리에 쇠고리를 걸어
앉은뱅이 의자로 새롭게 출시 되고
앉은뱅이 의자는 새벽부터 구르고 구르고
시장통이 잠들 때까지 드르륵 드르륵
평생 긁지 않던 바가지를
한꺼번에 다 긁어버리겠다는 듯이
이십여년을 가슴에 묻은 고향을
다 긁어버리겠다는 듯이
우정동사람들의 마음도 얼얼하게
드르륵 드르륵 구르고 구르는
분이 언니는 지금, 황혼이 바쁘다
 
 
2. 그는 억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억새를 좋아한다고
억수로 좋아한다고 했다
11월의 억새만치나 세어버린 머리카락의
그는, 억새구경도 못했다고 했다
시간이 도무지 없다고 했다
일들이
그의 손을 그의 발을
그의 허리를 그의 가슴을
그의 머리와 손, 발톱 까지를
꾸 욱 눌러버려
그는 움직일 수 조차 없다고 했다
그를 기다리던 억새는 속절없이 지쳐가고
그 역시 억새보다 더 휘청거리고
억새를 보려면 내년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데
 
그는 억새도 없는 도시에서
억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수없이 밟혀 찢어진 콘크리트속에서
그는, 억새가 되어 흔들렸다
 
 
3. 겨울 강
 
 
마른가지 주어다가 빈 둥지 틀던 새야
꿈에 겨울 강을 건넜구나
타향살이 주름잡던 반백의 고독이
잿빛으로 흘러가며 눈을 아리누나
백노들이 하늘 향해 목련으로 피어 울고
까마귀들이 강위를 나비춤으로 맴도누나
낚시줄 늘이고 고독 낚는 무덤아,
저 귀신 달래줄 목탁소리 없느냐
원혼이 떠도는 반공에 햇빛만 눈시구나
 
 
 
4. 그 풍경
 
 
돋보기를 걸고 본다
아주아주 빛 바랜 사진을
다섯 살배기 딸애가
자기 머리 통 만한 참외를 들고 웃는다
삭아서 새까만 이가 다 드러나도록
활짝 웃는다
아이의 뒤에는 도랑이 흐르고
젊은 내가 빨래를 하고
그 뒤에 올망졸망 보이는
낮다란 흙집들
그래 맞어
 
그 뒤엔 큰 길이 있었고
소달구지들이 투덕 툭 툭 소똥 굴리며 굴러 갔고
손잡이 뜨락또르가 통 통 통 볼부은 소리를 냈지
큰 길 옆에는 학교가 있었고
운동장에는 아이들이 왁작지껄 시끄럽고
교실 안에는 낭랑한 글 소리가 넘치고 넘쳐서
마을을 잠겨 버렸지
그랬었지
그랬는데
 
나는 울며 불며 매달리는 여덟 살 딸애를 뿌리쳤지
낮다란 흙집들이 싫었고
도랑에서 빨래하는 내가 싫었고
큰길에서 투덕 툭 툭 똥 싸는 소들이 싫었고
통 통 통 볼부은 소리를 내는 손잡이 뜨락또르가 싫었지
그랬었지
그랬는데
 
고층빌등의 아파트에서
드럼세탁기로 빨래를 하며
고급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아주 잘 살고 있다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때가
그때 그 풍경이
그 색바랜 사진속의 모두가
자꾸만 생각나고 그리워진다
가슴 한 켠에서 여덟 살 딸애의 울음소리가
자꾸만 울려나온다
 
 
   
▲ 시름없이 웃으며 피고 지는 들꽃과 그 향기
 
5. 세잎꿩 비름의 再起
 
 
세잎꿩 비름이 늦가을 된 서리에 쓰러지고
진물이 고인 침묵의 나날들
 
뿌리의 상처를 찢어 싹을 틔우고
터져나오는 아픔들이 꽃으로 피어
꽃들의 가슴을 열어 줄기를 올리고
줄기의 오체투지로 세잎의 비늘을 떠 올리며
 
저 암흑속의 처절한 몸부림이 아프게 전해오는 홀로서기의 나날들
개콘을 보며 웃다가
드라마를 보고 찔끔거리다가
해빛이 부서지는 강가를 거닐다가
따슨 이불속에서 뒹굴다가 꿀잠에 빠지다가
새털구름, 양떼구름, 접시구름, 비닐구름들을 다 올려다보고 시간이 없다고 툴툴대기만 하는 나의 나날들
 
고삐에 끌려다니다가 쏘맥 한잔으로 풀며 나의 하루는 후딱 가버리는데
지겨운 일상뿐이라고 인생사주나 보며 귀인의 출현을 학수고대하는데
 
저 눈 덮힌 땅속에서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고
어둠속은 재기의 꿈들로 빛날 것이고
봄이면 작품들이 치솟을 것이니
 
 
6. 입을 다문 시간들
 
 
밖은 겨울시체처럼 싸늘하다
나가려고 입속을 맴돌다가 끝내 나가지 못한다
한번 나갔다가 떨었던 기억이
나가볼 엄두를 싹둑 자른다
 
갇혀산지 역사만치 오래다
 
가끔 튀어나와 집앞 음나무의 가랑잎에 툭 나앉아서
드문드문 찾아오는 비늘구름들과 휘여휘여 즐기다가
길 옆 들고양이들 맑은 눈속으로 들어가 새롬새롬 쉬기도 하고
서리맞은 장미꽃 갈피에서 주절주절 흐르다가
해 지면 잔에 담긴 술이 되기도 한다
 
바람도 들지 않는 빛 없는 가슴에
시큼함으로 되새김되는 긴 시간
 
말이 홍어처럼 삭는다
말이 메주처럼 뜨겁다
 
 
7. 담쟁이
 
 
치매로 달립니다
칠십평생 잡으셨던
그 손을 놓고
이파리에게
가지에게
피와 살까지 다 내어주고
혼자 간답니다
 
영감, 왜 그러우
나도 가고 싶소
담을 넘으려는 손가락 물어 뜯으며
참아왔던 날들이 단풍이 되었습니다
손톱, 발톱 닳아가며 치열하게
써내려간 삶의 흔적들
박제로 굳어진 어머님의 일기를
담벼락에 새겼습니다
 
 
8.지평선
 
 
열심히 뛰였던 일상들이 허무하게 빠스라지오
방향표의 간판들이 메아리 없이 죽어가오
 
입을 벌린 흙구뎅이들이 교태를 부리고
온 몸을 흔들며 뿌리박는 나무들이 숲을 이뤘소
 
여기가 천국이라오
 
바람에 씻긴 달의 냄새들이
수많은 별의 어휘를 부리는 괴성들이
말 달리던 잿 빛의 초원에 이슬로 맺혔소
 
지상과 하늘의 틈바구니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튕겨나오고
나는 희미하게 퍼져나가며
영혼없이 소멸되가오
 
 
9. 홍시
 
 
옥탑방, 별하고 가까운데
갈 수 없는 너의 방
 
학벌에 자격증에 사랑의 중력에
해빛아래서 발광 한다
 
족보도 묻지 않아 과거도 필요 없어
형수씨든 제수씨든
 
가을의 끝에 해와 달을 말리다가
내 씨가 말라간다
 
 
10. 산사나무
 
 
햇빛의 언어로 고백하고
달빛의 은유로 마음을 녹이던
뜨거운 여름의 시어
비의 연가로 점자를 새기고
바람의 찬송으로 감성을 부풀리던
깊어가는 가을의 작문
겨울의 축복이 흩날리는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미련없이 추락하는
찔광이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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