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신문/동북아신문] 장백산 아래 두만강변에는 6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있다. 근로용감한 연변인민들은 바로 이 땅에서 ‘한족은 조선족을 떠날 수 없고 조선족은 한족을 떠날 수 없으며 소수민족은 소수민족을 떠날 수 없다’는 좌우명을 내세우고 중화민족문화권 속의 독특한 조선족문화를 꽃 피우면서 다민족문화 융합의 한페지를 아름답게 수놓아가고 있다.  본지는 계렬보도 <장백산 아래에 민족문화의 향기 그윽하네>로 그 실태를 펼쳐보이고저 한다.  <편집자 주>

 
                                                                 

제1편 특색문화 부호에 비낀 창조의 열정

■〈붉은 해 변강 비추네〉, 광동촌에 울려퍼지다
붉은 해 솟았네/천리 변강 비추네/장백산 아래 사과배 열리고/해란강반 벼꽃 피네…

수확의 계절에 기자는 시진핑 주석이 몇해전에 다녀갔던 화룡시 동성진 광동촌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노인들로 무어진 광동촌농민문예공연대가 마을 광장에서 한창 공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한시기 전국인민들이 애창하던 〈붉은 해 변강 비추네〉가 구성진 선률을 타고 마을 상공에 오래도록 울려퍼졌다.
“올해에만 이미 관광객 20여만명을 접대했습니다. 문예공연대가 은을 냈지요.” 광동촌 당지부 서기이며 촌민위원회 주임인 김영숙이 기자에게 하는 말이다.

평균 연령이 70세인 마을의 문예공연대 대원들은 관광객들이 들이닥칠 때면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공연을 하면서 팽이처럼 바삐 돌아쳐야 했단다. 올해의 공연 차수는 무려 80차에 달했다.
“관광객들은 우리의 공연을 보고 오기를 잘했다고 말했지요.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즐거웠지요.” 71세에 나는 문예공연대의 ‘맏언니’ 주금숙할머니의 말이다. 다들 찾아오는 외지 관광객들에게 조선족전통문화를 알려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움직였기에 일할수록 힘이 났단다.
광동촌의 문예공연은 인젠 마을사람들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으로 되었다.

■중국조선족농부절 전승인 오정묵,‘어곡전’에 반하다
‘어곡전’과 ‘어곡미’는 룡정시 개산툰진 광소촌 하천평 마을의 논과 그 논에서 나는 쌀을 두고 하는 말로서 과거 황제에게 바쳤던 쌀로 유래된다.

고귀한 ‘혈통’을 갖고 있는 ‘어곡전’과 ‘어곡미’의 위대한 부활을 위해 20년 가까이 혼신을 불태우고 있는 조선족 유지인사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선족농부절 전승인 오정묵(65세)선생이다.
2007년부터 시작하여 오정묵 선생은 9회째 두만강반에 자리 잡은 ‘어곡전’에서 중국조선족농부절 행사를 추진해오면서 ‘어곡전’에서 펼치는 ‘농부절’과 ‘풍수제’ 의식을 길림성 문화재 명록에 등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그가 중국조선족 농경문화 발굴 사업에 쓴 사비만 해도 600만위안에 달한다.

변경향진에 들어선 국내 첫 이동조립식 공익영화관
지난해 11월에 룡정시 백금향에 세워졌다는 이동조립식 공익영화관이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정부의 문화혜농정책의 지원으로 세워진 이 영화관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제일 첫 이동조립식 공익영화관일 뿐만 아니라 국내 첫 변경향진 공익영화관이기도 하다. 좌석이 50개인 영화관 내부는 도시의 영화관에 못지 않게 아늑하고 편안한 감을 준다. 매주 두번씩 무료 관람이다.
공익영화관이 들어서면서부터 이곳의 조선족 군중들은 갈 곳이 있게 되었고 볼거리가 있게 되었다.
한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조선족 군중들을 위해 향정부에서는 우에서 내려보내는 조선말영화외에도 가끔씩 품을 들여 자체번역도 한다.

▲ 백년부락에서 펼쳐진 중국조선족전통씨름경기

백년부락에서 중국조선족 거주문화의 맥락을 찾다
도문시에서 두만강을 거슬러 남쪽으로 20여키로메터 남짓이 올라가느라면 조선족전통마을로 해내외에 이름난 백년부락(백룡촌)을 볼 수 있다. 부락에서 역사가 제일 오랜 가옥은 지금 이곳의 주인 김경남씨가 거처하고 있는 조선족 팔간기와집인데 130년의 세례를 겪었으나 여전히 원 모양 그대로이다.
김경남(66세)은 한국에 나가 번 돈에 형제들의 돈까지 300만원을 들여 백년부락을 만든 전설적인 인물이다.
김경남은 우리가 없어도 나중에 후세들이 자기의 눈으로 조상들이 사용하던 가옥과 물건들을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민족의 얼을 간직하도록 하는 게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꿈이라고 거듭 곱씹는다.
백년부락에서는 올해까지 2회째 중국조선족전통씨름경기를 펼쳤는데 우승을 한 힘장사에게는 황소를 상으로 주었다.
중국조선족 거주문화를 보여주는 문화적 징표로 자리 잡은 백년부락은 이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아름다운 풍경지로 떠올랐다.

■‘동방제일촌’ 방천촌 중국 명촌으로
중국대지의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방제일촌’으로 불리우는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은 중조(북)러 3개 나라의 접경지대와 제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 ‘동방제일촌’으로 불리우는 훈춘시 경신진 방천촌
길림성 첫 명촌지 《방천촌지》는 방천의 역사와 인문, 지리, 풍토와 민속 그리고 경제사회건설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방천촌지》는 국가급 중대 문화프로젝트에 선정돼 편찬되었으며 2017년 12월에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있은 《중국 명촌지 총서》 발행식에서 중국 명촌지 문화 프로젝트상을 수상했다.
역사적으로 방천촌은 두번 없어지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한번은 1938년에 일본침략자들에 의해 마을이 없어졌고 다른 한번은 1957년의 홍수로 두만강이 범람하면서 마을이 밀려갔다. 1965년 정부에서는 강태원을 방천촌당지부 서기로 임명하고 그를 비롯한 18명 조선족 당원들을 방천으로 이사시켰다.

‘물 마실 때 우물 판 사람 잊지 말라’고 올해 방천촌에서는 마을을 전통문화촌으로 대개조하면서 강태원 로서기를 대표로 한 개척자들을 기리는 취지에서 마을 뒤켠 호수가에 ‘태원각’을 세웠다. 몇세대의 노력을 거쳐 오늘날 방천은 중국조선족특색마을, 길림성8경, 중국 아름다운 레저향촌, 국가 4A급 풍경구로 몰라보게 탈바꿈했다.

방천촌에는 옹군애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통으로 남아있다. 부대의 지도원은 방천촌당지부 부서기를 겸임하고 조선족 촌민들과 군민의 정을 끈끈히 다져가고 있다. 조국의 변방을 지키는 자제병들을 위해 조선족 촌민들은 명절이면 찰떡에 맛있는 반찬을 장만해 부대를 위문하고 문예공연을 펼치며 매번 신병들이 오면 환영회를 베풀고 로병들이 떠나갈 때는 석별의 정을 함께 나누면서 군민 융합의 아름다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저명한 시인 하경지는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돌아보고 “산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열사비”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연변은 지금 마을마다 산업이 흥성하고 전통가옥이 줄지어서고 생태문명환경이 이루어지고 촌관리가 잡혀지고 사람마다 복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보다 싶이 마을마다 그야말로 조선족전통문화의 요람이다.

 

제2편 가무로 보는 민속문화의 정수 

 

■〈도라지와 말리화(道拉吉与茉莉花)〉, 두 민족 전통민요의 ‘선보기’
“조선족 전통민요는 100여년의 파란만장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이 땅에 뿌리를 박고 꽃을 피우면서 중화대가정의 찬란한 민족문화로 빛을 뿌리고 있다.”
연변가무단 단장 김휘는 이렇게 말하면서 〈도라지와 말리화〉는 중국의 아열대 산지에 자생적으로 피는 말리화와 심심산골에 피어 있는 도라지를 소재로 하여 부르고 전해내려온 조선족 전통민요와 한족 전통민요의 융합종목으로서 중요한 행사거나 순회공연 때면 연변가무단을 비롯한 기타 여러 문예단체들이 무용 또는 가야금 등 다양한 형식으로 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다고 기자에게 소개했다.

지난 2007년 1월, 연변TV 음력설야회에서는 문예종목 〈도라지와 말리화〉를 무대에 올렸다. 연변에서 조선족 배우들이 중국민요 〈말리화〉를 열창하고 북경에서 기타 민족 배우들이 〈도라지〉를 열창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전체 배우들이 함께 한 민족대단결 장면을 떠올려 종목의 절정을 이루었다. 민족의 정서가 묻어나는 〈도라지와 말리화〉의 선률이 무대에 울려퍼지자 관중들은 음악적 감성에 젖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왔고 이 종목은 독특한 도전과 혁신으로 수많은 관중들에게 진한 감동과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도라지와 말리화〉는 2012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 경축 행사의 하나인 대형광장예술공연에 등장, 제3장에 배치되어 장내 수만명 관중들에게 조화롭고 문명한 연변의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서로 손 잡고 아름다운 가원을 건설할 데 대한 연변 여러 민족 인민들의 한결같은 염원을 남김없이 표달했다.
〈도라지와 말리화〉는 이미 말리화의 티없이 맑디맑은 깨끗함과 도라지의 소박하고 강인함의 깊은 함의가 내포된 값진 문화적 재부로 부상했다.

■밀강 퉁소, 70여년 전승의 맥을 이어가다
1994년 전국변경문화건설현지회의를 계기로 훈춘시 밀강향의 퉁소는 가정 안방과 밭머리로부터 전국의 예술무대에까지 등장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독특한 변경문화로 부상했다. 그 후 중국민간문예가협회로부터 밀강향은 ‘중국조선족 퉁소예술의 고향'으로 명명되었다.
얼마전에 기자가 밀강향에 도착했을 때는 밀강신민악예술단(2017년 11월 밀강퉁소협회로 설립, 2018년 11월 밀강신민악예술단으로 등록) 회원들의 공연연습이 한창이였다. 백년고택을 배경으로, 고운 명절옷차림을 한 마을 농민배우들로 마련된 무대는 구성진 퉁소가락과 우리 민족 전통악기 장고가 잘 어우러져 자못 이색적이였다.

밀강퉁소행사의 코기러기 김진수는 “밀강신민악예술단은 중국조선족 밀강퉁소예술의 맥을 이어가고 밀강 퉁소의 매력을 살려 퉁소문화를 전승 발전시키려는 뜻을 같이 한 53세로부터 72세까지의 17명 퉁소애호자들로 구성되었다”며 “요즘에는 퉁소, 단소, 새납 등 세가지 악기를 위주로 매주 세번씩 훈춘시와 밀강에 모여 연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퉁소는 제1대 전승인인 한신권으로부터 오늘날의 제3대 전승인 리길송에 이르기까지 7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민족전통악기인 퉁소는 민간인들의 전승을 거쳐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주고 희망을 부여해주었으며 오늘과 같은 행복한 생활을 노래하는 전통악기로 널리 사용, 그 선률 속에는 우리의 역사와 정취 그리고 숨결이 어려 있다.

 

■온돌공연 시골마을 주름 잡다
따스한 안방을 노래와 춤, 웃음과 환락으로 들끓게 하는 화룡시문화관예술단(2000년 화룡시예술단과 화룡시문화관 합병)의 온돌공연은 61년간 줄곧 화룡시의 시골마을 농민들이 기다려보는 인기 공연종목이다. 그중 온돌공연의 인기종목인 ‘삼로인’(조선족 소품의 한가지)은 국가급 무형문화재에까지 등재되여 연변 특색의 구수한 입담으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61년 사이에 화룡시문화관예술단 배우들은 30여만키로메터에 달하는 온돌출행여정, 1,000여개의 문예종목을 창작하면서 만여차 공연, 연인원 300여만명 관객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창조하였다.

“지금은 소형버스가 있지만 예전에는 없었지요. 공연에 필요한 음향도구와 전신기자재들을 전부 어깨에 짊어지고 도보로 강추위와 싸우면서 돌아다녔지요. 편벽한 두메산골까지 다 돌았지요.”
화룡시문화관 관장 최영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화제를 ‘삼로인'으로 돌렸다. 연변 조선족 구연종목중 하나인 ‘삼로인’이 국가급 무형문화재에 등재될 수 있은 것은 온돌공연이라는 독특한 공연형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단다.

‘삼로인’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배우들의 맛갈스러운 연기 또한 관중들의 웃음보를 연신 터뜨린다. 이리하여 전문가들은 ‘삼로인’을 시대에 발맞춰 사회를 잘 반영하고 관중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며 긍정에너지를 전파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람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실로 연변은 곳곳마다 가무의 고향으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군중문화생활을 풍부히 하고저 광장문화행사만 20여년을 견지해왔다. 지금은 ‘주일마다 활동이 있고 달마다 주제가 있는’군중문화브랜드가 기본적으로 형성되었다. ‘퉁소의 고향’외에도 ‘상모춤의 고향', ‘민속행사의 고향', ‘장고춤의 고향'으로 해내외에 널리 알려져 있다.
중화대가정 속의 연변의 민족문화는 자체 민족의 토양에 뿌리를 박고 여러 민족 문화의 정화를 섭취하여 서로 유기적으로 융합된 강대한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로 정립되어 보다 아름답고 문명한 내일을 수놓아가고 있다.

 

제3편 산업과 문화의 즐거운 만남

■ 진달래와 진달래촌 그리고 관광산업
봄이면 연변의 산과 들에는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여나면서 연변의 전체가 꽃동산을 이룬다. 그래서 주화(州花)도 진달래다. 진달래가 만발할 때면 화룡시 서성진 진달래촌에서는 진달래국제문화관광축제가 열린다. 2006년에 제1회를 시작해 올해로 벌써 10회째, 어느덧 진달래축제는 화룡의 ‘얼굴’로, 연변의 ‘브랜드’로 떠올랐다.

사실 처음부터 진달래촌에서 진달래축제가 열렸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천연 진달래가 가장 무성하게 피여나는 명암촌 산기슭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2010년에 명암촌이 홍수에 잠기면서 마을의 83가구가 지금의 위치인 진달래촌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진달래촌으로 마을 이름을 정하게 된 것도 유래가 있다. 수재를 겪은 촌민들의 ‘의식주’ 해결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떠오른 그 당시, 당과 정부의 관심과 정책의 인도로 연변의 주화(州花)이자 화룡의 시화(市花)인 진달래의 이름을 따서 명암촌을 진달래촌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연후에 진달래촌 마을 주민 전부가 조선족이라는 민속문화 조건을 내세우고 거기에 자치주 소재지 연길과 장백산 사이에 위치해있는 지리적 위치와 교통 우세를 빌어 민속관광지 발전 계획을 제시, 본격적으로 민속관광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촌민들의 ‘의식주’ 해결에 살손을 댔다.
당과 정부의 정책 탄력이 은을 냈다. 나라의 소수민족발전기금으로 건설된 움김치회사는 지금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움김치회사가 지급하는 이익 배당금, 민박으로 벌어들이는 유숙료, 민속기념품 판매 등 산업이 촌민들의 안정된 경제생활과 노후생활을 든든하게 견인하고 있다.
“2017년에 우리 진달래촌을 방문한 관광객은 도합 32만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올해 진달래축제 개막 당일만 13.5만명이 진달래촌을 찾았죠. 멀리 프랑스에서 온 관광객도 있었구요.” 진달래촌 제1서기 김영해의 말이다.

 

■중국결(中国结)의 계발로 조선족 민속결 탄생
중국결은 중국 특유의 수공 매듭공예품이다. 중국결이 상징하는 풍치와 지혜는 중화 고대문명의 한 측면이기도 하며 특별히 민간에서는 중국결이 대표하는 단결, 행복, 평안의 이미지와 섬세하고도 정교한 솜씨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 고대문명 원소에 조선족 민속 원소를 불어넣어 민족특색문화로 승화시킨 장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룡정시 신화촌 촌민 박경훈이다.

2005년에 사평에서 중국결 장인을 만나게 되면서 중국결이 엮어내는 정교한 매듭 하나하나에 매료되어 그것을 배우기로 결심한 그는 그 후 중국결에 조선족 전통문화를 접목시켰다.
조선족 민속결은 중국결과 그 의미와 맥락은 비슷하나 일정한 차이가 있다. 박경훈은 중국결의 판결(盘结)과 술 사이에 소보치를 더 조합해 넣은 다음 붉은 단색인 중국결의 술을 조선족 민속특색을 띤 5색 비단처럼 5색실로 장식해 이었다. 그리고 소보치 속에 빨간 고추, 파랑 고추, 화성을 담아내니 중국결과 좀 다른 민속작품이 완성, 이를 조선족 민속결이라 이름 지었다. 물론 조선족 민속결에 사용된 모든 작품은 박경훈의 손끝에서 나온 민족정이 다분한 실매듭민속공예품이다.
자칫 개인의 ‘손재주’로 남을 번했던 실매듭민속공예품이 당지 정부의 중시와 소수민족정책의 혜택으로 룡정시 관광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박경훈은 이미 실매듭민속공예 전승인으로 발탁됐으며 실매듭공예는 자치주 무형문화재에 등재되어 있다.

■ 민족전통악기 내지로 세계로 나간다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는 전국 유일의 조선족악기생산성보호시범기지로서 조선족악기의 혁신, 생산, 전승에 앞장 서고 있다.
그중 악기는 아니지만 상모춤에서의 한개 도구인 상모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모형을 만들어 찍어내는 방식으로 소비자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양적 생산을 실현했다. 우리 민족의 지혜와 근로함을 대표하는 물동이춤에 사용되는 물동이에 대한 미적 수준도 한단계 승화시키면서 사용자들의 관상은 물론 사용에도 편리를 도모했다.

연길시민족악기연구소는 현재 주로 장고, 북, 소고, 편고, 꽹과리, 징, 아박 등과 같은 타악기, 퉁소, 단소, 피리, 대금, 중금, 소금 등과 같은 관악기, 가야금, 아쟁, 거문고, 해금 등과 같은 현악기 총 3가지 부류의 40가지 품종의 조선족악기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년간 악기에 대한 수요량이 급증하고 있다. 악기는 동북3성을 벗어나 북경, 상해, 광주, 사천, 심수 등 전국 각지 대학교 지어는 한국, 조선, 일본, 말레이시아 등 국외에까지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 1000 가족이 함께하는 전통된장 담그기 체험행사

■ 된장이 문화가 되고 문화산업이 되다
기업인 리동춘은 조선족 전통음식의 하나인 된장을 문화로, 생태문화산업으로 업그레이드시킨 주인공이다. 전통된장은 2009년에 길림성과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무형문화재에 등재되었다.
조선족 전통식품에 내포되어 있는 물질적인 기능과 문화적 원소를 더욱 깊이 있게 발굴하여 문화식품 시대를 선도하자는 목적으로 해마다 생태문화절과 전통된장오덕문화절을 개최, 동시에 전통발효식품 발굴을 위한 국제학술대회도 소집하군 했다.

전통식품문화를 고양하고 전승하기 위하여 6월 9일을 ‘전통된장의 날’로 정하고 1,000가족이 동시에 참여하는 전통된장 담그기 체험 행사를 해마다 개최해오고 있다. 특히 체험 행사는 민족을 가리지 않아 한족 참가자들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사진작가, 서예작가, 미술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서로가 작품으로 민족전통문화를 교류하고 습득하고 있다.
지금은 연변의 고속도로가 사통발달하고 고속철이 개통되면서 전통식품이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고 발전 전망도 더욱 커졌다.
연변에서는 2007년에 ‘문화강주(文化强州)’ 전략을 제출하고 민족문화발전을 부축할 데 관한 정책들을 시행하여 민족특색의 문화산업을 21세기의 황금산업으로, 새로운 경제성장점으로 삼고 드팀없이 추진하고 있다.

/길림신문 홍길남 리철수 김성걸 리전 김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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