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
[서울=동북아신문]올해 7월 초순이다. 고향 방문차 연길에 갔다가 나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전날 밤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깊은 잠 못 들고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3시 15분에 일어나서 백두산 1일 여행 준비를 하였다. 여행사에서 지정해준 출발 지점에 이르니 새벽 4시 15분, 5분 앞당겨 도착했다.  

버스는 8시에 안도현에 도착하여 할빈, 하북성, 심양에서 온 여행객들을 태우고 백두산을 향해 출발하였다. 항상 호기심을 주체 못하는 나는 도대체 어디를 거쳐서 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 지도를 준비해 갖고 오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  내내 목을 길게 빼들고 기웃거린 덕분에 그래도 조양천, 로두구, 오호령(五虎嶺), 안도현 석문진, 명월진, 만보공사, 송강진을 거쳐 백두산의 관문-이도백하진에 도착함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고동하(강이름)도 만났다.  바다와 물, 산과 나무, 풀과 꽃들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나는 스스로도 전생에 사막에서 살다가 오지 않았나 자문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내 차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걸탐스레 눈요기를 하였다.  울바자 밑의 해바라기, 줄당콩들이 갸웃거리고 있었다. 하얗게 핀 올감자 꽃들이 앞다투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길가에 소담하게 피어난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얀 갖가지색의 이름 모를 들꽃들이 소리없이 맞아주었다. 길 양옆의 해묵은 가로수들은 손을 뻗쳐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명월진을 벗어나니 낮은 돌다리 아래로 맑은 개울물이 모래알을 굴리며 돌돌 흐르고 있었고 순종(純種)의 말쑥한 황소와 암소들이 한가로이 꼬리를 흔들며 풀을 뜯고 있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피와 땀으로 미개척지의 간도 땅을 억척스레 개간하여, 손수 고향에서 갖고 들어온 볍씨를 뿌리고, 재배하여 황실귀족에게까지 공급한 입쌀을 만들어 냈다. 그 벼들이 오늘도 연변의 벌마다에서 푸르싱싱 잘도 자라고 있었다. 눈이 모자라게 펼쳐진 산과 들에서 해마다 씨 뿌리고, 가꾸는 농부의 마음은 자식을 키우는 마음과 같으리라. 푸른 잎사귀를 흔들며 어리광 부리는 저애들에게서 어이 발길이 떨어지랴?! 더욱더 손이 가고 가꾸고만 싶겠지! “미인송은 늙은수록 예쁘다(美人松 越老越俏)”고 한다. 아직까지 나는 미인송보다 더 끼끗하고 감상할만한 나무는 보지 못했다. 이도백하의 명물, 어여쁜 자태의 미인송을 보지 못하면 평생 한이 되리로라.  
▲ 이도백하 장백산 미인송
 장백림해에 들어섰다. 소소리 치솟은 아름드리 나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20여년 만에 만나보는 “정정옥립 자작나무(婷婷玉立 白樺樹)야, 억겁의 세월을 이겨낸 억센 자작나무야! 너희들은 어데서나 여전하구나!” 나무는 물에 가라앉고, 돌이 물위에 뜬다는 민족의 영산-백두산에 다달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아래에서, 나도 낮지 않노라고 선언하는 백두산이 올려다 보였다.  30여 명의 여행객 중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리지널 중국인들이었다. 천지를 걸어 올라가려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많이 걱정하는 관광 가이드에게 사고가 나면 책임은 스스로 진다는 각서에 사인을 하고 가볍지 않은 배낭을 둘러메고 신들메를 조이고는 가볍게 발걸음을 뗐다. 백두산 폭포와 백두산 천지 입장권을 샀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11시 10분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백두산은 조물주께서 한 삽, 한 삽 깎아 내려서 만든 거대한 영산이었다. 산마다에는 수없는 삽자리가 또렷이 찍혀 있었고, 한삽한삽 크기의 파여 내려온 돌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도 녹지 않은 “만년설”들에도 뚜렷한 “삽자리”가 역력히 찍혀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장백폭포는 한줄기 흘러내리는 은 주조물 같았는데 가까이 보니 세차게 하얀 은가루를 날리고 있었다.  백두성산아, 내가 왔다. 혼자 외치고는 총길이 1484m, 905개의 계단이 있는 천지등산장랑(天池登山長廊)을 오르기 시작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내려오는 사람들뿐, 뒤를 돌아다보니 역시 내려가는 사람들뿐이었지만 내 집 복도에 들어선 듯 마음은 편하기만 했다.  신들린 듯 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단숨에 천지에 뛰어 오르지 못하는 것이 못내 한스러웠다. 숨이 턱에 닿아도 걷고 또 걸어서 보이지도 않던 남녀들을 한사람씩 뒤로 멀리 떨어뜨렸다. 다시 한 번 나의 용기, 건강, 의욕을 확인하였다.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오고, 가슴이 탁 트이더니 웅위로운 천지가 그 자태를 나타냈다. 그이는 잿빛수염을 늘어뜨린 푸근하고, 위엄있는 할아버지시었다. 한걸음에 뛰어가서 맑디맑은 천지 물에 손을 담그고 시간을 보니 12시 5분이었다.  
▲ 멀리서 바라본 천지 폭포
바람 자고 물결 고요한 천지의 푸르른 하늘가엔 햇솜 같은 구름 몇 조각이 두둥실 떠있었다. 변덕스런 7월엔 70~80%의 사람들은 천지를 만나볼 수 없단다. 강택민 전총서기도 세 번이나 천지를 방문했지만 천지는 한 번도 자기를 내 보이지 않았단다. 그런 천지가 푸근하게, 자애롭게 나를 얼싸 안아준다.  하나님께, 백두성산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내 가족과 친인,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의 축복을 빌었다. 부모님과 친구들 몰래 이 절경을 혼자 독차지한 것 같아 눈물이 앞을 가렸다. 천지에 온지 십분 밖에 안 된 같은데 쏜살같은 시간은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고 시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걸음에, 한번 뒤돌아보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 백두산을 뒤돌아보았다. 푸근함으로부터 완연히 달라진 기암괴석의 험준한 백두산이 그 누구도 거절 못할 위엄으로 우뚝 다가왔다. 백두산의 정기에 전율을 느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마음속으로 부르짖어 기도를 드리고 하산하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등산보다 더 어려운 걸 백두산에서 처음 알았다. 씨엉씨엉 올랐던 그 계단(물이 질벅함)을 내려다 보니 70~80도로 경사져서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다리를 떨며 겨우 내려왔다. 백두산의 불가사의는 다가갈 때와 뒤돌아서 볼 때의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층계를 내려올 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폭포를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그 은가루들은 어디로 모두 날려갔는지…… 수천만 개의 옥구슬들이 뭉쳐지고 부서지고 또 흩어지며 아래로 와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지척을 구르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황홀경에 빠지게 하였다. 시간아, 잠시만 멈추어 다오! 아니, 다시 찾아오리다! 백두산에 세 번 오르지 아니하면 한이 되리다!!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어머니 젖줄기여서인지 희다. 왜서인지 가 본 사람은 알 것이고, 가보지 못한 사람은 가보면 알 것이다. 뼈를 어이는 물에 잠깐 발을 담구고나서 신끈을 조였다. 백두산이여, 내가 인생의 길에서 열심히 달릴 수 있도록 무궁무진한 힘을 다오! 돌아오는 길에 나의 얼굴은 시종 변함없이 오른쪽으로 향하여 있었다. 차창가로 스쳐 지나는 일초일목이 그렇게 귀할 수가 없었다.  백두산아 영원하라! 내 민족이여 영원하라! 집에 돌아오니 시계바늘이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 하나의 잠들 수 없는 밤이다.  7월 6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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