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호텔식당을 운영했던 이후로는 그 운영보다 더 힘든 일을 겪지 못했다.
같은 중국이지만 지역문화가 다르기에 첫 시작부터 엄청 힘들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수속을 거쳐야 할 부서가 16 개나 되었다. 위생국, 공상국, 세무국, 환경보호국, 전력청, 수도관리처, 외사처( 변경도시라서 外事科를 거쳐야 했다.) 파출소 ...... 하여튼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업자등록증이 나온 이튿날부터 여기저기서 찾아 왔다. 인맥관계가 없이는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음을 인지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하던 걸 인수해서 했던 호텔은 시설이 엉망이어서 보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전기시설부터 시작하여 난방시설이며 냉방시설, 화장실이며, 침대며, 침대보, 커튼, 주방시설과 주방도구...... 이 모든 것들은 예상한바가 아니었지만 상상을 훨씬 초월하였다.
그래도 인테리어는 한국 업체에 맡겨서 그만하면 순리로운 편이었지만, 자질구레한 보수는 현지 중국인에게 맡겼더니 하루에도 몇 번을 싸워야 하는지 일하는 것보다 더 맥이 빠졌다. 업주와 상의도 없이 자기네 생각대로 해놓고는 고치라고 하면 까다롭다고 투덜대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한번은 결제를 제시간에 안 해줬다고 숱한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으름장을 놓으며 난동을 피워 대서 속상했던 적도 있다. 다행히 국세청에 있는 조선족과장님이 나서서 조회를 했기에 일이 크게 벌어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 고마운 조선족과장님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지금도 이런 말을 하군 한다. 식당을 운영해본 사람은 그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다고. 그 만큼 식당운영이란 이런저런 여러 가지 일을 다 겪기 때문이다.
호텔방은 관광계절인 5월부터 10월 사이에만 했기에 그리 힘든 일은 없었지만, 일요일도 없이 했던 식당은 정말 사람의 애간장을 태웠다. 손님이 없을 땐 없어서 속상하고 많을 땐 많아서 힘들었다. 결혼식이나 연회가 있는 날에는 새벽 3시부터 밤 11시까지 온 하루 앉아 있을 시간도 없이 분망히 보내야 했다. 시장을 직접 보며 채소를 구입해서 많이 들고 다닌 탓인지 한번은 어깨가 너무 아파서 팔을 들 수가 없었다. 일주일동안 병원 다니며 치료를 받아서야 겨우 나았다. 또 한 번은 독 감기에 걸렸는데 편안히 누워서 앓을 수도 없었다. 링거를 맞고 곧바로 식당으로 향해야 했었다.
그렇게 고생을 했건만 사업은 애쓴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2년 6 개월 만에 결국 접게 되었다. 비록 경영에서 성공은 못했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인간관계며, 이 사회의 실정이며, 운영체제와 방식들, 그리고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법...
그 후 나는 한국에 입국해서 고시원생활부터 시작했고, 식당알바도 하군 했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 자세와 태도는 아마도 힘들었던 그 시기를 힘듦의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한국생활에서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예전에 힘들었던 그 시기가 오늘날 나에게 보상을 주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피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그 언제가 되든 꼭 보상을 준다.
가장 힘들었을 때를 기준으로 삼고 있으면 그 척도로 극복해낼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긴다. 극한의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한 삶의 욕구와 의지가 생기게 된다.
지금도 나는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그 때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지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