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 글/촨시법사(传喜法师)

信为菩提基,믿음은 보리의 기초,

三学树法幢;삼학수 법장에,

培植七圣土,칠성토 재배하며,

宝山共清凉。보산에서 함께 맑고 서늘한 기운 누리리

 “고문수사(古文殊寺)에서의 하루”, 이 짧은 영상은 우리 매 사람은 모두 이 곳의 건설자임을 기록하고, 우리들이 지불한 이 모든 것의 노력이 헛되지 않으며, 삼보(三宝)는 명기하고 시공은 깊이 아로새길 것이다. 우리들은 소매를 걷고, 바짓가랭이를 잡고, 땀투성이가 되어 착실하게 일하기 시작한다. 기초를 잡을 때 한 조각 평지로부터 오늘날 형태를 대강 갖추기까지 이는 365일이다. 돌 하나, 기와 하나, 못 하나 홈 하나, 낱낱의 땀방울들이 모여서 낸 주렁주렁 열린 과실이며 또한 성실한 노동과 정말로 확실하게 일하여 현저하게 드러낸 가치적인 추구이다.

 
특히 각국각지 및 해외에서 온 의무 노동자 신도들이 1년에 만에 넘는 인수이다. 그들은 안일한 생활을 내려놓고 여기에 와서 부지런히 공헌하고, 즐겁게 인력, 물력, 재력, 심력을 공양한다. 각종 곤난을 극복하고 일념의 초심을 굳게 지킨다. 이 만이 넘는 의무노동자들은 삼보의 법력을 받아 보호하고 부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절간에서도 그들 때문에 한층 엄숙해졌다. 동시에 불교문화가 함유한 은혜에 감사하고 자족하며, 청정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정신경계, 및 스스로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비 지혜는 생생하게 의무 노동자의 마음 속에 융합되어 들어가서 우리들의 견실한 신앙의 길을 부설하였다. 이것인즉 개체생명이 가치상승을 실현하고 사회의 조화, 문명의 진보를 촉진하는 유력한 보증이다.

우리들이 건설하는 과정에 자연히 이웃하고 있는 푸성촌(伏胜村)촌민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은 그들의 순박하고 선량함은 가장 본질적인 인성의 회귀가 넘쳐흘러서 우리들에게 마음을 녹이는 지지와 도움을 주고 우리들의 부흥의 발걸음을 고무한다.

 
어떤 촌민은 자신의 집의 논밭을 아까워하지 않고 강개하게 절에 귀증했다. 우리는 농사일을 인수하고, 농업과 불교에 관한 일을 모두 중요시 하였으며, 자신을 경작하였다. 출가인 이 군체는 역시 멀리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해냈다. 그들은 앞장 서서 군중을 이끌고, 의로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시골에 가서 쇠똥을 꺼내고, 논에 가서 벌레를 잡아 방생하며, 효소를 발효시켜 비료로 썼다. 그리고 지게차를 몰고, 용접을 하며,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치며, 여러 가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각종 건축재료를 구매하고, 일일이 실현하였다. 낮에는 노동을 그만두지 않고, 밤에는 경법을 들었다. 매일 낮 불을 지펴 시식하고, 매일 밤 등을 밝혀 바다와 같았다. 아침저녁공부는 스님들의 적적한 생활이지만 태양은 매일 모두 새로운 것이였다.

 
우리들이 모든 정신공간, 물리공간을 모두 공덕으로 전화하려 했다. 설사 평지더라도 우리들은 그를 인간세상의 정토로 건설하여 했다. 우리 출가인은 매일 해야 할 일을 견지하며 그 속에서 고생을 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도 얻었다. 외재한 절을 건설하기보다 심령속의 도장을 건설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리공간으로부터 심령의 도장에 이르기까지 유형의 도장을 건설한다기보다 심령의 도장을 건설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물리공간으로부터 심령의 도장에 이르기까지 유형의 도장을 건설한다기보다 우리 자신을 건설하고, 우리들의 신앙의 길을 부흥시킨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문명의 건설자일 뿐만 아니라 또 선조문화의 계승자이며 자손 문맥(文脉)의 창설자이다.

 
 
소위 중생은 불성을 갖고 있어야만 절은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절은 문명의 부호이고, 생명의 학교이며, 우리들의 인생과제이고, 누가 그를 생각하면 누가 이익을 얻는다. 그는 우리 불교제자의 경건한 마음이 현화되어 온 것으로 보살부처가 법력을 가하고 부축한 힘의 환상화가 드러난 것이며 세간의 복덕선업이 변현되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무에서부터 유에 이르기까지 한 절의 부흥은 이렇게 많은 선업력을 응집하고 있다. 오늘의 하나의 선념과 선행은 우리 이 생명이 오대산과 불원--각오의 연을 맺게 하였다. 모두 연이 있는 자로서, 생방송을 보고 일 념의 남의 선행을 보고 기꺼이 참가하는 마음이 일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모두 절을 부흥시키는 공덕대해에 참여를 해야 한다. 설령 일위안(1元)의 돈을 공양하더라도 이 사원을 건설하는 공덕을 얻게 된다. 설령 벽돌 하나를 나르고, 성지순례를 하다가 임시 여정을 바꾸어 반나절의 의무 노동을 하더라도 전체 복건의 공덕을 얻을 것이다. 이는 불법의 기묘함이고 보살부처의 자비이며 소위 “작은 것을 버림으로서 큰 것을 얻고, 불도를 터득한 인연이 있는 자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지 물리상의 건설이 아니고, 간단한 사원의 부흥이 하니다. 건설을 원인으로 하여 이 사원건설의 현재에는 무수한 참여자들이 이익이 되고, 이 점점 우뚝 일어서는 사원은 현재 이 세상의 모든 인연이 있는자들에게 이익을 주며, 동시에 이 선연은 사원 부흥의 장엄함이 되고 있다.

 

촨시법사(传喜法师) 약력:

최시법사(传喜法师)는 1967년 상해에서 출생했다. 1994년 우궁(悟公) 어르신에 의하여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으며, 스승은 청밍양(承明旸) 큰스님 등 여러 고승이 있었고, 찬도우(禅道) 큰 스님에 의해 불법을 전해 내려갔으며, 워이양중(沩仰宗)10대계승자로서 불교교리를 정밀하게 연구하고 교리에 통달하였다. 2004년 동남아시아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그후 유럽과 미국의 요청에 응하여 각국에서 불법을 전파하고, 중국전통문화가 세계로 나아가는 ‘탐험가’가 되었다.

생명방송국의 주요 강사법사이고, 《유럽신보(欧洲新报)》, 미국《신보(新报)》, 《문화대관(文化大观)》, 《치루주간(齐鲁周刊)》 등 국내외 각 신문 “불교학칼럼” 니스트이다. 법사는 시대맥락과 고리를 굳게 끼고, 5000여 년간 길게 이어진 중화문명과 연결하여, 불교의 시각으로 중국전통문화의 당대가치를 선전하고 설명하며, “도(道)”로 생명의 경계를 높이고, 인류자아의식의 위기를 돌파하며, 문화재건의 노드에서 “도(道)”는 인류운명공동체가 공동으로 갖고 있는 재부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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