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북아신문]나는 회사에서 주는 포상으로 태국여행을 신나게 다녀왔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우리 사무실에서만 아홉 분이 여행을 가게 돼 더욱 흥이 났다. 이번 여행은 우리 강북 팀 150명이 함께 하는 중대한 행사이기도 했다.

인생은 선택이란 말이 있다. 현명한 선택은 삶 전체를 바꾸어 놓기도 한다.

바야흐로 녹색이 짙어가는 지난 5월 13일부터 3박 4일간, 나는 현재 내가 몸을 담고 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을 내 생애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자부하며, 드디어 태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태국의 고도 아유타야
태국에서 맞는 첫날 아침은 모닝콜의 염치없는 울림이었다. 날이 희붐히 밝기도 전, 비몽사몽 간에 기상을 해야만 했다. 호텔 조식은 한국에서 자주 먹지 못하던 흰죽과 말랑말랑한 빵이 있다. 또한, 이름 모를 열대야 과일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식사 후 귀로만 듣던 아유타야 유적지로 출발했다. 이곳은 1350년~1767년까지 417년간 번성한 왕조였다. 한때 나레쑤언 국왕은 이 부강한 왕국을 만들기 위해 코끼리를 타고 2.5m의 장총으로 버마의 총장을 한발에 멸한 신화 같은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 곳이기도 하다. 태국은 현재도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다. 400개 사원에 19개 성곽을 가진 이 도시는 동서양을 잇는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웃 나라인 버마의 침공으로 옛날 번성하던 도시가 폐허로 무너져 내렸다. 그 잔영들로 인해 사원들은 지금도 군데군데 허물어지는 아픔을 충분히 볼 수 있다. 보리수나무 밑에 깔려 들어간 불상 머리는 수백 년의 세월 속에 여전히 인자한 미소로 세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보리수나무 밑의 불상은 1991년에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아유타야 유적 관광은 폐허를 둘러보는 일이었다. 왕궁과 사원들이 모두 파괴된 상태 그대로이다. 지금도 적색 벽돌로 만들어진 많은 탑이나 건축물들은 기울어지고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화려한 건축물과 부조, 아름다운 불상의 남은 부분은 한때의 영광을 드러내면서도 워낙 거대한 폐허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 더 처연해 보였다. 동시에 어쩌면 복구하기 불가능하게끔 완벽하게 파괴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과 많이 다른 유적지를 보며 이것이 후세대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아닌가 싶다. 불상들의 머리, 손, 팔, 다리가 동강 나고 잘려나간 참상을 그대로 보존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여행객이 보리수나무 밑에 있는 불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두 손으로 합장하면서 경건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려가는 계단 밑으로 골목사이마다 처절한 전쟁의 아픔이 엿보였다.

 

차오프라야강 크루즈야경
차오프라야강은 태국 방콕을 가로질러 흐르는, 태국에서 가장 큰 강이다. 북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365km 이상을 흘러 방콕을 통과하여 타이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전체 길이는 1,200km이며, 160,000㎢의 용수량을 가지고 있다. 메남강으로도 불린다. 메남은 어머니의 젖줄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이 강은 태국 최대의 곡창지대를 관통한다. 또한, 차오프라야강과 지류들에 운하를 건설하여 치밀하게 연결하였다. 덕분에 아유타야 상인들은 차오프라야강 어디서든 배를 타고 방콕 앞바다 타이만으로 진출할 수가 있었다. 20세기 중반까지 차오프라야강에 수많은 배가 있었다. 태국인들은 배에서 생활하며 먹고 자며 상업에 종사했다. 지금은 수상 시장을 떠다니는 배들이나, 수상가옥에서 희미한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사원에서 기도를 마친 사람들이 수로에 먹이를 던지면 물고기들이 펄쩍거리며 몰려든다. 이 강에 서식하는 거대한 도마뱀도 이리저리 오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변에 초현대식 고층건물도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우리 팀은 이 강에서 야경을 보고 유람선 여행을 하게 된다. 백오십 명이 집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차오프라야강은 우리의 일상을 시원히 날려 주듯 거침없이 흘러간다. 출항과 동시에 팀장님의 오프닝연설이 있고 최고 직급자 세 분이 덕담을 했다. 1, 2층에서 배가 함몰할 듯 건배 제의를 외쳤다. 개인 장기자랑이 끝나고 만찬뷔페와 여유로운 식사시간이었다. 와인 두잔 쯤하고 있을 때 위층에서 구수한 색소폰 소리가 익숙한 멜로디로 우리의 한껏 부풀려 있는 낭만의 가슴을 적셔왔다. 이선희의 ‘인연’, 장윤정의 ‘초혼’, 등 여러 곡을 연주했다. 나중에 검은 중절모자에 블랙 의상을 입은 연주자는 우리가 있는 밑층으로 내려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연주했다. 연주자는 색소폰을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장난감 다루듯이 능수능란하게 연주를 멋지게 했다. 음악에 잔뜩 취한 여사님들이 연주자의 가슴에 팁이라며 돈을 마구 찔러 주었다. 선상에서 저녁노을과 함께 단체촬영 사진을 남기자는 연락을 받고 모두 올라갔다. 시원한 차오프라야 강바람과 함께 진한 핏빛 노을이 어느 미술가의 정교한 솜씨로 저녁 하늘을 곱게 물들여 놓은 듯했다. 백오십여 명의 여사님들은 낭만과 운치가 흐르는 노을과 함께 챠오프라야강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추억의 사진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단체촬영을 마치고 개인 촬영도 마치자 우리가 탄 배가 나루터에 도착했다.

 

라마4세 여름궁전
라마 4세는 몽꿋 왕으로 알려진 태국의 짜끄리 왕조의 네 번째 군주이다. 재위 기간은 1851년~1868년까지 17년이며, 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왕 중의 하나이다. 1946년 영화를 바탕으로 한 <왕과 나>라는 연극은 외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통치 기간에 서양의 개혁을 포옹했고, 기술과 농업 분야에서 시암의 현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묘비명에 있는 “시암의 과학과 기술의 아버지”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마 4세 여름 궁전은 1858년에 지어진 곳으로 자신의 휴양과 특별한 손님을 초대하기 위한 장소이다. 이곳은 작은 언덕 꼭대기에 자라 잡고 있으며 태국 왕조 최초의 별장으로 기록되었다.

라마 4세 여름 궁전은 후아흰의 아름다운 전경이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또한 황금 사원과 기념비가 격조를 한층 높여 준다. 태국, 중국 및 유럽풍의 건축양식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파른 언덕에 케이블카가 마련되어 있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단지, 궁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갑자기 양쪽에서 뛰쳐나온 원숭이 두 마리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뒤로 물러섰더니 이놈도 약한 자를 알아보고 앞으로 한 발 더 달려들었다. 그러다가 앞에 가는 동료의 다리에 붙어서 기절할 뻔 했다. 원숭이들이 얼마나 잽싼지 우리 팀원 중 한 동료의 음료수병을 낚아채 가면서 목선을 벌겋게 피가 나도록 긁어 놓았다. 나무 위를 올려다보니 원숭이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음료수 뚜껑을 아주 익숙하게 열어서 여유롭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원숭이들의 세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오싹해 난다.
하늘은 파랗다 못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맑았다. 높은 전망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우리들의 심장까지 식혀 주는 것 같았다. 유럽풍의 흰색 건물이 그림을 펼쳐 놓은 듯 환상적이었다. 전망대 꼭대기에는 태국 국기가 펄럭이고 있고 멀리 다른 궁전도 보였다.

 

위험한 재래시장
1905년 문을 연 이 시장은 아무 특별한 것 없는 시골 시장이었지만, 나중에 한가운데로 철로가 뚫리면서 지역 명물이 되었다. 현지에서는 이 시장을 ‘딸랏 롬훕’으로 부른다. 딸랏은‘시장’, 룸은‘우산’, 훕은‘접다’이니 ‘우산을 접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매일 네 차례 왕복하는 기차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열한 시 반에 모이기로 하고 한 시간 정도 자유 시간을 가졌다. 삼삼오오 헤어져 각자 필요한 것을 사기도 했다. 시장 안은 무더운 날씨와 함께 비릿한 생선 냄새가 느껴졌다. 철길양쪽에는 이름 모를 열대과일이며 각종 채소가 우리들의 시선을 끌었다. 동글동글한 파란가지도 자두 크기만큼 하고 양배추도 마늘 크기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새끼손가락 크기만큼의 바나나에 눈길이 꽂혀 한 다발을 샀다. 다양한 생선과 메기 바비큐 맛이 궁금했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역무원의 방송과 함께 베이지색 옷을 입고 호각을 불며 파란, 빨간 깃발을 들고 대피령을 내렸다. 불과 삼분 안에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적응된 듯 신속히 대피했다. 기차는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상인들은 기차의 높이에 익숙한 듯했다. 아슬아슬하게 기차가 레일 위를 지나갔다. 이런 번거로움은 오히려 외국인들에게는 이색적으로 보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시장’이란 별칭이 붙었다. 철길시장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았다. 동남아 쪽으로 여행 오면 사람들은 망고나 두리안 코코넛을 많이 산다. 이 시장은 똑같은 물건인데 가격이 조금씩 틀렸다. 한 사람이 열 봉지씩 사다 나니 재고가 없을 정도였다. 이런 재래시장은 물건도 다양하고 저렴했다. 가는 곳마다 이 나라의 자랑인 코끼리가 옷에, 치마, 바지, 가방에 그려져 있어 코끼리 세상이었다. 일행 중 두 분은 다양한 물건을 구매하다가 양산을 두고 오고, 브랜드 선글라스를 두고 오기도 했다.

수상시장
담넌 싸두악 수상 시장에 가서 보트를 타면 1시간 정도 수상 가옥과 수상 시장을 돌아볼 수 있다. 여기는 자칫하면 바가지를 쓰기 쉽다. 담넌 싸두악의 똔켐 운하에 형성된 수상 시장이다. 똔켐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양쪽으로 작은 쪽배를 타고 온 열대 과일, 채소, 해산물 식당, 음료 등 행상들로 북적인다. 우리 일행은 구명조끼를 입고 여섯 명이 한 조로 쪽배를 타고 출발했다. 따가운 햇살 아래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코코넛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 위에 꽃 한 송이까지 올려놓은 감각까지 아주 예술이었다. 더위 먹은 속을 달콤하고 상큼한 코코넛 아이스크림으로 달래 주어 환상적이었다. 배들이 얽히고설키는 동안 상인들이 여행객들을 태운 배를 붙잡고 물건을 판다. 옷 파는 가게에서 배들이 추돌하는 바람에 잠깐 위태로웠지만, 옷가게 주인이 잽싸게 긴 고리로 우리 배를 끌어당겼다. 우리는 그분의 직업의식에 감탄했다. 우리는 모자 파는 쪽배를 발견하고 너도나도 써봤다. 이백 빠트의 모자를 흥정해 보니 백오십 빠트에 살 수 있었다. 배에서 내려 현관으로 나오니 똑같은 모자를 백빠트에 살 수도 있었다.

 

태국마사지
태국 하면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건 그 나라 마사지이다. 누구나 태국에 가면 한두 번쯤 받아 보고 싶은 코스일 것이다. 나는 며칠간 힘든 여행 중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바로, 매일 여행을 마치고 저녁마다 마사지하는 시간이었다. 온종일 걸어서 피곤한 몸을 마사지 사들에 맡겨 피로를 푸는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은은한 불빛 아래서 태국만이 생산하는 특유의 아로마 요법으로 여독을 달래는 시간이다. 마사지사들은 전신을 오일로 풀어 주면서 숙련된 테크닉으로 마사지를 시원하게 해줬다. 마사지를 받고 나면 온몸이 날아갈 듯했다. 호텔로 돌아와 자는 잠은 꿀잠이었다.

맺는 말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하여 태국의 역사와 문화를 한층 더 깊이 알게 되었다. 비록 무더운 날씨였지만 다양한 지식과 견문을 넓혀 수확이 참으로 컸다. 비단의 길(실크로드)을 동서로 잇는 태국은 세계 각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음식문화가 아주 발달되어 있다. 입이 즐거워야 여행도 즐겁다고 했다. 방콕수도의 뾰족뾰족한 모양의 화려한 왕궁과 자연경치가 여행객들의 눈을 한없이 호강시켜 주었다. 오늘날의 황홀한 이 왕궁은 아유타의 처절한 아픔 위에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나는 5월의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잔디밭에 살포시 앉았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태국에서 잊지 못할 일기 한 편을 노트에 조용히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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