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5월23일 방송 작품

▲ 천숙 약력: 중국 벌리현 교사 출신. 집안 심양 등지에서 사업체 운영,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수필, 시 수십 편 발표
[서울=동북아신문]얼마 전에 고향에서 새로운 정책이 실시된다며 호적부를 복사해서 보내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지금은 통신시설이 좋아서 세계 어디서나 위챗(중국 카톡)으로 영상통화도 할 수 있고 서류도 사진으로 전송이 가능하다. 사진을 찍으려고 호적부를 펼치니 오랫동안 무심히 지나쳐 왔던 단어가 확 안겨온다.

 <籍慣(적관)- 朝鮮(조선)>

  40여 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한번 부모님께 籍慣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그 후로는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에 대한 개념이 점점 무뎌져 갔다. 내가 태어난 곳은 중국이고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라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 깊이 박히게 되었다. 중국의 교육방침에 의해 조선 역사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어릴 적에 이런 말을 종종 하시였다. 돈을 벌어서 나중에 아버지의 고향인 이북에 가서 산다고. 아버지의 부모형제 모두 이북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것은 갈망일 뿐이었다. 이북의 경제가 중국의 경제보다 점점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되고, 1992년에 한중수교가 이루어지자 나도 그 물결을 따라 십 여 년의 교직생활을 접고 대도시로 이주하여 한국인들과 일을 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민족이지만 살아 온 환경과 받아 온 교육이 달랐기 때문에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모순이 있었다. 그때는 한국이 선진국이란 걸 알면서도 한국인은 외국인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심지어 초창기에는 한국인들이 동북3성에 대한 역사이야기를 하면 ‘왜 남의 나라 땅을 자꾸 자기네 나라 땅이라고 할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 후 인터넷으로 한국역사드라마를 다운 받아 보면서 나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 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영향 하에 2006년도에 고구려유적지에 가서 호텔을 합작운영 하였다. 백두산 관광코스도 함께 연결하면서. 거기에 있는 몇 년 동안 고구려유적지 답사를 자주 다니면서 적지 않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고 주몽(동명성왕)이 고구려를 세운 첫 도읍지인 졸본(지금의 요녕성 桓仁만족 자치현)에 있는 오녀산성, 고고려 2대왕인 유리왕이 졸본에서 옮긴 두 번째 도읍지 국내성, 아버지의 공덕을 기념하기 위해 장수왕이 만든 광개토왕릉과 광개토왕비, 동방의 금자탑이라고 불리는 장수왕릉, 적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위나암성(지금의 丸都山城), 天際를 지내던 곳 國東大穴, 그 외 많은 고구려 귀족들의 돌무덤들과 고분벽화...... 이 모든 것들에는 우리의 뿌리인 고구려인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지금은 한국생활 8년차에 접어들었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하고 상처받는 일도 있어 여기가 외국이 맞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굳이 중국, 한국, 조선족, 한국인 이런 거 따지지 않는다. 글로벌시대인 만큼 우리는 모두 지구인일  뿐이며 나의 뿌리는 조선인이라는 것만 잊지 않는다.

  세계 어디를 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언어를 배우고, 외국생활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통로라고 생각할 것이다. 글로벌한 조선족으로 살아 갈 것이다. 세계의 중심은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아니다. 어디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있는 곳, 그 곳이 내가 사는 세계의 중심이다.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것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관광명소, 세계일류의 서울 지하철과 인천공항, 높은 국민의식과 친절한 서비스, 어딜 가도 먹을 고민 안 해도 되는 한식과 글로벌 음식들, 아름다움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화장품과 세련된 패션......이런 것들이 있는 곳, 대한민국이 내가 사는 세계의 중심이다.

  이제 남북이 통일 되면 나는 또 어디로 흘러갈지 가슴이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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