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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수기] 재수 없던 날, 그리고 따뜻했던 감회

기사승인 2018.02.09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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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진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수필 수기 다수 발표
[서울=동북아신문]한국정부가 동포들을 상대로 방문취업제도를 실행한지도 이젠 11년이 된다. 이 제도는 우리의 자유로운 고국방문도 가능하게 했고 또 취업활동도 대단히 편리하게 했다. 그전에는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수속과 절차가 너무 번잡하고 까다로워서 합법적인 취업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불법으로 일하다가 재수 없이 한국의 악덕업자들을 만나면 힘들게 일하고도 돈도 받지 못하고 또 재수 나쁘면 출입국관리사무소일군들의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피땀을 흘리며 번 돈을 범칙금으로 내고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례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한국에 와서 돈을 벌어야만 했던 나도 어쩔 수 없이 한국의 노동법을 위반하면서라도 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불법취업을 하다가 재수 없게 불법체류자단속에 걸려 고국에 와서 난생처음으로 운수 사납게 차디찬 수갑도 차보고 경찰호송버스도 타보고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소안에서 하룻밤 수감되어 있으면서 보호소밥도 먹어 보았다. 비록 이튿날 범칙금 120만원을 내고 출소했지만 아직도 그때 그 일이 눈에 삼삼하고 귀에 쟁쟁하여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서러워 나고 가슴은 미여지는 듯이 아파난다.
 
때는 방문취업제(H-2)를 시행하기 몇 달 전인 20061229, 그때 나는 서울 동대문시장근처의 청계천 바로 옆에 있는 롯데복합상가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외국인등록증은 F-1-4였다. 한국오야지가 취업수속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여의치 못하여 불법으로 일하고 있었다.
 
건설현장의 지하3층에 현장식당(함바식당)이 있었는데 점심시간은 1130분부터였다. 동료들은 식사를 마치고 휴게실로 올라갔는데 나는 오늘따라 밥맛이 좋아서 천천히 즐기며 먹고 있었다. 갑자기 왁 짝 시끄러워지더니 사람들이 식당 안으로 몰려들어 오는 것이었다.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나왔던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아차! 큰일 났다. 이를 어쩌면 좋아? 정말 재수 없구나!) 무의식중에 벽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니 정각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날 오전에 해고당한 몇몇 한국인 근로자들이 현장 앞에서 농성을 벌였는데 중국동포들 때문에 자기들이 잘리었다며 중국 놈들을 쫓아내자고 외쳤단다. 한편으로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고전화를 해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촉구했단다. 하여 중국동포들이 제일 많이 모여 있는 점심시간에 식당이 이렇게 급습을 당한 것이었다.
 
식당출입문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일군들이 통제하고 있어 숨을 곳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검거된 중국동포들이 무려 100명이나 되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오야지와 동료들이 출입국관리사무소일군들에게 따지고 들었다. “왜 고국에 와서 힘들게 일하며 고생하는 동포들을 잡아가냐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느냐?”고 야단들이다. 그러자 출입국관리사무소일군이 우리의 방문비자로는 취업이 불가한데 일을 했으니 엄연히 한국의 노동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팀장이 이런 것도 모르고 사람을 쓰면 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동료들은 너무 속상해 말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그들의 따뜻한 말과 의로운 행동에서 뜨거운 동포애와 동료애를 가슴 뜨겁게 느꼈다.
 
우리를 태운 경찰호송버스는 동대문에서 떠나 눈 내리는 한강북로를 따라 서울출입국사무소가 있는 양천구로 달리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하얀 눈꽃이 날리는 이런 날 버스를 타고 서울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고 아름다운 한강남북로를 달려가노라면 기분이 한없이 유쾌하고 마음은 형언할 수 없이 즐거웠을 텐데 재수 없이 이렇게 죄인처럼 끌려가니 마음은 너무나 슬프고 가슴은 찢어지는 듯이 아파났다. 고향에 계시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집에서 세 살 난 어린 아들을 키우며 내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들을 생각하니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경찰호송버스가 목동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본관에 도착하자 우리는 조사실로 끌려갔다. 25세쯤 되어 보이는 관리일군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장난기가 다분해 보였다. 그는 풀이 싹 죽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잔뜩 긴장해 있는 우리를 보고 웃으며 이렇게 위안해 주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잠시 우리나라 노동법을 위반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시고 마음 편히 조사를 받으시면 됩니다.” 그러면서 동포 분들을 잡아오는 이런 일은 자기들도 정말 하기 싫은데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고국을 믿고 찾아온 불쌍한 동포들을, 집 떠나 이역만리 타관 땅에서 별별 고생을 다하며 피땀을 흘려 돈을 버는 우리를 잡아온 그들도 결코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호소안에서 중국동포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병상련이라고 한국에 와서 다 같이 고생하는 같은 처지인지라 어느새 서로들 친해져서 마음속에 맺혔던 말들을 마구 털어 놓고 있었다.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 땅에서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고국에서 백의민족으로 살고 싶었는데 생각밖에도 외국인으로 취급되어 법적으로는 동포대우도 못 받고 또 갖은 사회적 편견과 인간차별시를 당하고 모진 인격적인 모욕도 받아왔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당했던 억울하고 피눈물 나는 사연들은 생각하기도 싫어진단다.
 
박영진씨!” 나를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가보니 철창문밖에 아까 그 젊은 관리일군과 사십대로 보이는 양복차림의 남자가 서있었다. 두 사람은 이상야릇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의아한 눈길을 보내자 그 관리일군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과장님도 성함이 박영진인데 중국동포 박영진씨가 이곳에 들어와 있다고 했더니 한번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고 해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내일 범칙금을 내는 대로 이곳에서 나갈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옷깃을 스쳐가도 인연이라 했는데 이곳에서 한국의 박영진을 만나다니. 족보를 캐보면 어쩌면 먼 친척이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처음 본 사람인데도 무척 친근하게 느껴졌다.
 
밤이 깊었다. 찜질방처럼 널찍한 보호실안에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잠들 수 없었다. 오늘 벌어진 모든 일들이 사실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파출소 문에도 들어가 보지 못한 내가 한국에 와서 이렇게 수감실에 갇혀 있으니 꿈만 같았다. 조용히 생각해보면 수갑을 차고 경찰호송차에 앉아 이곳에 와서 이렇게 외국인보호소안에 수감되어 자유를 박탈당한 것이 너무나도 수치스럽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노동법을 위반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가본다. 물론 내 가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만 말이다.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인기척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벌써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사람들이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면서 보호실안은 여간만 시끄럽지 않았다. 한참 지나니 아침 식사가 들어 왔다. 마음이 너무 심란하여 밥맛이 없어 어제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더니 배가 무척 고파왔다. 게눈 감추듯 식사를 하고나니 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일 죽더라도 먹고 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그런 희망과 여유 있는 낙관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식사가 끝나자 모두들 출소하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철창문이 열리더니 식사담당직원이 범칙금액수가 적힌 종잇장을 들고 들어와서 모두들 모이라고 했다. 범칙금액수는 현장에서 일한 기일에 따라 결정되었는데 나는 기일이 짧아서 120만원이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되어갈 무렵이었다. 내 이름을 부르자 나는 얼른 철창문을 빠져나갔다. 다시는 들어오고 싶지 않은 재수 없고 기분 나쁜 곳이었다. 조사실에서 출소수속을 마치자 나는 부랴부랴 보관함에서 작업복을 꺼내 갈아입고는 총알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거위털같이 하얀 눈이 하늘하늘 춤추며 내리고 있었다. 날 반겨주는 눈꽃들이 유난히 사랑스럽고 유정하게 느껴졌다. 좁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여러 오야지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노동부의 허가 없이 중국동포들을 일 시킨 그분들도 적지 않은 범칙금을 냈단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이었다. 사실 말이지 그분들도 합법적으로 우리 중국동포들을 쓰고 싶었지만 한국의 외국인고용노동법이 너무나 엉터리없고 합리하지 못하여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새벽이 밝아오는 것처럼 그동안 세상은 많이 좋아졌다. 따사로운 재외동포법의 혜택을 받아 고국에서의 중국동포들의 사회적 지위도 점점 높아지고 모든 활동도 자유로워졌고 삶의 질도 많이 좋아졌다. 시름놓고 발편잠도 못자며 날마다 근심걱정으로 숨을 죽이고 항상 기가 죽어서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힘들고 괴로웠던 세월도 이젠 영영 가버리고 나도 이제는 떳떳하고 당당한 영주권자로 되었다. 사랑하는 이 고국 땅에서 이제부터라도 마음껏 단군의 후손으로, 깨끗한 백의민족으로 즐겁게 웃으며 살고 싶다.
 
2018. 02. 07 전북 김제 만경 제이피엠

[편집]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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