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유재: 중국 소주 常熟理工学院 外国语学院 朝鲜语专业 교수/ 한국 숭실대학교 현대문학 박사졸업/ 재한동포문인협회 해외이사
살아있는 아픔

 

추억에 젖으면 여려지고

바람에 물들면 강해진다고

어려울 건 이젠 사실 없다고

이미 밑바닥인데 더 어디로

내려갈 수도 없지 않느냐고

쉽사리 버릴 수 있을만큼

하찮았으면 애초에

오지도 않았다고 간혹 아픈건

아프지 않기 위한 그때를

아껴두려는 배려라고

아 또 뭐라고나 할까 언젠간

아주 아프지 않은 귀속도 있다고

 

나에게 말해두던 나의 그 소리

나는 기억하고 있었니

살아있는 아픔을 사랑하라고

 

2017.12.04

 

별과 소망

 

별을 보며 소망 하나씩

정성껏 빌었다고

 

실은 그 소망들이 솟아

멀리 높이 별이 된거라고

 

눈빛처럼 찬연한

 

2017.12.03

 

돌아오기

 

아침은

아침이면 돌아온다

 

하루종일 뛰놀던 아해

익숙한 삽작문 열어젖히는 것처럼

논밭일 끝내고 귀가해

천천히 여물 새기는 둥글소처럼

 

저녁도 그렇다

 

2017.12.01

 

그날

 

그녀는 그날의 비를 떠올리지 못하였고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잊지 못하였다

울먹임이 비처럼 그녀를 가렸다

혹시 틀린 기억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날은 만나고 싶었던 누군가를 위해 있어진 것

그날은 위안해야 할 다른 한 사람을 기다리는 것

그날은 울 줄 아는 큰 용기가 부른 젖은 소리

그날은 적시지 못했던 메마름의 아우성

 

정확한 건 원래부터 잘 없을지도 모른다

그날에, 그날에 비가 왔을 것이다

 

2017.11.25

 

쓰다 그만둔 글들

 

쓰다가 그만 둔 글들을 지나칠 때면 그들의 우두커니한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그들은 나를 일제히 바라본다 혹은 겨우 윤곽만 갖춘 채 혹은 거의 형체를 온전히 입은 채 

그곳을 그는 갔다……버려진 것도 떠난 것도 아니건만……마음에는 창이 있다면서요……기억이 파랗게 일어섰다……그림자가 나를 끌고 어디론가 가는데…… 

그들은 각자 한 줄씩 꺼내어 스스로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小雪날 저녁 心境의 앞마당 나의 등뒤를 따라오면서 자박자박 발자국을 하나 둘 오래도록 찍고 있었다 

2017.11.22

 

겨울 저녁 정거장

 

한파가 후회보다는

반성에 가까운 느낌으로 정거장을 감쌌다

빨간옷의 소녀가 감탄부호처럼 서있다

몸이 떨릴 때마다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용서할 수도 용서받을 수도 있다는

미안한 안도감과 함께 어둠이 어디에나 깔렸다

사람을 미워했던 불편함은 추위보다 더 춥다

버스 몇 대가 지나갔고 내리거나 오르는 일이 그 전에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오고 가는 걸 기다림에 맡긴다

이 무렵에는 나에게도 앉을 자리 하나쯤이 어딘가에 미리 있을 것이다

 

201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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