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인상을 수상한 고송숙 수필가(오른쪽)
▲ 고송숙 수필가가 수상소감을 발표하다
[서울=동북아신문]여름휴가를 보내던 중 부산 누리 마루에서 정교하게 진열된 한식 요리를 보았다. 깔끔하고 익숙한 요리들을 보는 순간 몇 개월 내내 한식 조리사 공부를 하던 시절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체류연장 하는데 필요 한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한식조리사에 도전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 5년 동안 식당을 운영했고 한국에서도 음식점에 8년을 일하 고 있으니 요리에 자신 있다고 믿었지만, 한식이 그렇게 어려울 줄은 상상도 못 하였다. 야채의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식재료를 다듬고 만들어 접시에 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감독관에게 보여주고 숙련도를 보기 위 해 맛을 보는 것이 금지되고 순서가 조리 있고 능숙하게 해야 한다는 규칙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리 조리법을 완벽하게 암송했어도 요리만 시작되면 순서가 뒤죽박 죽 되고 조미료를 잘못 넣기도 하고 재료가 타버리거나 익지 않고 규정 된 치수보다 길거나 짧게 재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시험에 ‘생선찌개’와 ‘육 원 전’이 나왔는데 긴장하여 허둥지둥 헤매다 보니 작업 시간이 종료 되어 급히 제출하였다.
“생선이 익지 않았어요. 1분만 더 끓었어도 익었을 텐데. 안타깝지만 실격처리를 하겠습니다.”

1분 너무 짧아서 하찮게 여기던 1분으로 실격을 받으니 나도 몰래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한 달 후에 다시 시험장에 나섰을 때는 ‘콩나물 밥’과 ‘무숙 장아찌’라는 너무 쉬운 메뉴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 있게 조리순서를 이어나가다가 갑자기 지난번 시험에서 익지 않았던 생선이 떠오르면서 이번에는 1분을 더 기다려 요리를 완성하였다. 여유만만 한 표정으로 밥솥 뚜껑을 열었더니 밥을 태워서 또 엉망이 되어 있을 줄이야. 밥을 태웠으니 표준보다 양이 적었고 모양도 예쁘지 않은 완성품을 제출했더니 시험성적은 애매하고 아쉽게 59점으로 불합격 되었다. 1분의 여유를 주지 말고 레시피대로 조리하면 합격했을 것인데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1분의 부족함과 1분의 넘침 때문에 1점이 모자라서 두 번의 시험에서 모두 낙방 되고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가정주부가 밥할 줄도 몰라서 불합격되었다는 놀림까지 받게 되었다.

오른쪽부터 고송숙 수상자, 청암문학 방효필 이사장, 신현산 수상자 순이다

 

그때의 망연한 절망감과 처절함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었다. 속상해서 울어 봐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 1분의 소중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아쉬운 실패에서 교훈을 찾고 재도전하여 더 이상 준비할 것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51가지 메뉴에 모든 사랑과 정성을 쏟아 붓고 열심히 연습했더니 제일 힘들고 어렵다는 ‘어선’이란 요리를 84점의 높은 성적으로 합격 되어 드디어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50대의 나이에 요리 공부를 시작하여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술 자격증을 받았고 51가지의 조리법과 함께하면서 51명의 많은 자식을 거느린 행복한 어머니로 자식 부자가 되었다. 51명의 자식들은 각기 서로 다른 이름만큼 다르게 살아가고 생김새도 성격도 각각 다르다. 어떤 자식은 청순한 강남 미녀처럼 우아한 멋으로 뭇사람들을 유혹하고. 어떤 자식은 순박한 시골사나이처럼 솔직한 뚝심으로 뚝배기 멋을 자랑하고. 귀 공자처럼 고급스럽고 오만하게 짙은맛을 뽐내는 자식도 있다. 또 어떤 자식은 재능이 뛰어난 철학자처럼 도도하게 강한 맛을 풍기고 막둥이는 여리고 약해서 만날 때마다 아기 냄새가 솔솔 풍겨서 짜릿한 모성애가 흐른다. 모두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의 살붙이들이다.

생각해보면 51명의 살붙이와 51번의 깊은 고뇌를 나누었고 51번의 땀.51 번의 설렘. 아니 그보다 곱절의 이야기와 꿈을 나누면서 합격과 불합격 사이를 숨바꼭질 하였고 미운 정 고운 정을 돈독하게 쌓아온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자격증 취득하는 이 길을 너무 빨리 지나쳤기 때문에 요리와 짧은 만남이 있었지만 나는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요리와 대화하고 매 요리들의 성격 취향 부족 점을 속속들이 보듬으면서 한 가 지 한 가지씩 부족함을 채워주고 작은 순서들도 차곡차곡 지켜가면서 하나하나의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서 예쁜 추억들을 쌓게 되었다.

조리사 공부시간은 한 편의 소설이었고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였고 요리에서 인생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깊은 깨달음의 길이었다. 그 동안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터득했기에 멋의 감각을 수없이 체험하였고 인생길에서 넘어져도 일어나는 도전정신의 참맛을 깨달았고 간절함이 있고 흘린 땀이 많았기에 자격증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으로 내내 흥분에 잠기게 하였다. 비빔밥 한 그릇의 정성, 찌개 한 그릇의 진정에서 채움과 비움. 세움과 무너뜨림. 뜨거운 정과 냉혹한 승부의 중요성을 터득하였고 신선한 맛과 멋이 서로 만나 머리와 가슴으로 멋진 요리가 완성될 때의 성취감을 가슴 뿌듯하 게 느끼게 되었다.

 

 

우리 인생은 매일매일 마주하는 요리와 같고 각자는 모두 자기 인생 을 요리하는 조리사이므로 한 번씩 만나는 자격증시험처럼 시험결과는 영원한 설렘이고 희열이고 미완성인 것이다.

그렇게 만나고 스치는 인연들과 단맛 쓴맛을 함께 맛보면서 인생을 조리하고 시험을 보고 감독관과 같은 타인의 평가를 받고 살아가다가 합격과 불합격의 심사를 거쳐 이 세상을 끝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인생이라는 짧은 작업시간에서 1분의 넘침과 모자람도 허용하지 않는 요리 레시피처럼 완벽한 삶을 살고 나만의 색깔과 나만의 조리사 기준으로 다양한 빛깔의 맛있는 삶을 잘 조리하여 인생을 살아가면 먼먼 훗날 삶을 끝마칠 때 모든 사람이 “당신은 합격한 인생을 살았습니다.”하는 <인생합격 자격증>이라는 시험결과를 받고 싶다.

빙그레 웃으면 서 훈훈한 마음으로 특수한 자격증 시험을 위하여 힘차게 도전해야겠다.

고 송 숙
연변작가 회원, 재한 동포 문인회 회원 , 안성문협 회원.
연변TV공모 수필부문 금상『봄과 가을』  
평강컵 수기공모 1등『시어머님의 유산』/
소설:『백송이의 노란 장미꽃』, 시:『13월의 사랑』공저

 

심/사/평 

진솔하고 사실성 높은 작품

심사위원 : 반숙자(글), 윤재천, 이미선

청암문학회에서 보내온 고송숙씨의 작품은 재한 조선족이라는 특수 한 신분으로 한국에서 살아내기를 담은 진솔하고 사실성 높은 작품들 이다. 편편마다 작가의 개성이 문장으로, 주제로 잘 나타나 오랜 절차 탁마의 노력이 빛을 낸다. 그 가운데서도 “요리에서 얻은 깨달음”은 발 단과 전개, 마무리가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고 요리에서 삶의 의미를 발 견하는 솜씨가 탁월했다

수필은 서사와 서정 그리고 사유의 삼박자가 잘 조화되어야 감동 있 는 수필이 된다. 이 글에서 서사는 작품을 끌고 가는 중요한 뼈대가 되 었다. 반면 서정성이 약하면 글의 정서가 메마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 가는 그것을 요리와 인생을 결부시킨 의미화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창 작한 점 높이 산다.

유의할 점은 작가가 다 말하려하지 말고 함축의 공간을 두어 독자가 사유하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과 문장의 길이에 유념했으면 한다. 앞 날의 대성을 빈다.

저작권자 © 동북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